[Opinion] 서로를 알아봐주는 지음(知音) [공연]

글 입력 2024.04.13 15: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9년 초연 공연, 2020년 재연 그리고 4년 후 2024년도에 삼연으로 다시 돌아온 뮤지컬 난설. 허초희와 허균, 그리고 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줬던 스승 손곡 이달에 대한 이야기이다.

 

 

1313.jpg

 

 

허초희는 시회를 가기 위해서 동생의 옷으로 변복까지 하고 외출하였다가 무뢰배들에게 폭행 이달을 발견하면서 이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거문고 연주를 해준 이달이 얼자라는 것과 그 이유로 자신의 형님에게 맞은 것에 대한 위로이자 거문고 곡조에 대한 답례로 노래를 불러준다.

 

백아절현(伯牙絶絃).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종자기가 죽자, 그의 친구이자 거문고의 명수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더 이상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허초희와 이달도 소리를 알아듣고, 서로의 속마음까지 잘 알아주는 지음이 된 것이다.

 

허초희가 가고 싶었던 시회. 묵월회. 붓으로 그린 달로 붓과 먹만 있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달이다. 이 시회를 주최하는 이달에게 허초희와 허균은 시를 배운다. 양민, 평민이라는 신분에 상관 없이 이름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나누고 서로의 지음이 되어주는 모임이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 속에서 보면 이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허초희는 오히려 억압당하거나 고통을 받을 때 더 꿋꿋하게 일어서서 더 많은 이들에게도 지음이 필요하다며 이야기한다. 이 모습을 통해 허초희가 그리고 바랬던 이상적인 세상, 그리고 세상에 한발 더 나아가길 원하는 모습, 더불어 여성으로서 사회적 진출하지 못하는 현실까지 알 수 있다.

 

세상의 적자라 불리는 이들이 오히려 더 나쁜 짓을 했음에도 수사는 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벽서를 붙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적자이기 때문에, 양반이기 때문에 서슴없이 행동하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사실에 허초희와 이달은 거사를 진행하였지만, 누군가 밀고하여 평민들이 거짓으로 묵월회의 우두머리인 이달에게 덮어씌우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허초희는 강제로 혼인하게 되고,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자신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을 찾아 글을 쓰고, 더불어 동시에 그 글을 더 멀리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놓아준다. 허균은 자기 누이인 허초희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오래오래 더 멀리멀리 글을 전하고, 그 누구에게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극 중 허균은 자기 자신이 그 소원을 이뤄주지 못한 것 같다며 자책하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여 이름을 쓰고자 하는 이들과,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을 지켜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귀한 일이고 어쩌면 평생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지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제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작품을 보는 사람이 잘 이해하는 것. 이것만큼 창작자와 향유자가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허균이 남긴 홍길동전을 우리는 아직 읽고, 홍길동이라는 인물에게 적대감을 가지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이 그 누구도 없다. 그래서 서류의 이름을 쓰는 예시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쓰여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아무 날에 누구의 아무나가 되어 어떤 날에 누구의 지음이 될 수 있는 글을 써서 몇 세대가 지나도록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중 대사를 인용하며 끝내보려 한다.

 

우리도 언젠가, 자신의 지음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떠도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머무는 모든 것들의 마음을 담아서 (중략) 아무 날에 누구의 아무나가 되어 어떤 날은 서로의 지음이 되어."] - 뮤지컬 [난설] 中

 

 

[조수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