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글 입력 2024.04.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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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벚꽃이 유달리 늦잠을 많이 잤다. 그만큼 개운했는지 혈색은 전보다 더 좋았다. 눈이 시리도록 예쁘게 피어 온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희끄무레 죽죽 하게 죽은 회색 하늘만 보던 날에 비하면 감격스러울 만큼 좋은 날이다.

 

흩날리는 꽃가루에 코가 좀 막히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기분 좋게 눈 뜨고 싶은 아침을 희멀건 하늘로 망치는 것과 화창한 하늘과 화사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코가 조금 먹먹한 날 중에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한다.

 

그럼에도 가끔 이 망할 벚꽃은 아직도 안 지고 있냐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모두가 벚꽃이 피면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벚꽃놀이 가자는 커플이 보기 싫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북적거리는 거리가 싫어서.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들은 이 화사한 봄의 노래가 그리도 듣기 싫었나 보다. 그렇기에 이들은 성실하지는 못해도 신실하게 기도를 올린다. 어서 빨리 꽃이 져버리라고. 저 커플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는 기도를 들어줄런가 싶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한 젓가락이 남은 음식 같은 기도를 꾸준히도 올린다.

 

이 전에는 도대체 언제 꽃이 피냐며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 울분의 절정은 벚꽃 축제 기간 바로 직전이었다. 예쁜 꽃도 보고 사진도 찍으려고 모든 계획을 다 세웠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직 겨울의 잔향이 곳곳에 배어 있었고 찬바람에 몸을 떨었다. 어서 날이 따뜻해지고 햇살이 내리쬐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견디다 못해 악에 받친 사람들의 고함으로 입가에 수증기만 피어올랐다. 그들의 기도를 들었는지 며칠 전부터 주변이 벚꽃으로 물들었다. 어디를 봐도 분홍빛 꽃잎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꽃이 피길 바라던 사람은 꽃놀이를 즐겼고, 지길 바라던 사람도 이제는 만족하지 싶다. 결국 다들 원하는 것을 얻었다. 존버는 이번에도 승리했다.

 

간단한 게 제일 어렵다. 욕심부리지 말고 지금에 만족해라. 그럼 행복해진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받아들이면 끝나는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지금 가진 것을 못 본다. 내 손에 없는, 저 멀리 있는 것만 그렇게도 잘 찾아낸다.

 

시린 겨울에는 꽃이 없다고 불평이고, 꽃이 핀 봄에는 왜 안 지냐고 불만이다. 소확행은 어디다 줘 버렸는지 다들 크고 확실한 행복만 찾는 것 같다. 어쩌면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대신 결핍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지 말라 배웠다. 그런데 모두가 청개구리처럼 열심히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빨리빨리 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아주 잠깐의 여유를 가지는 게 너무 힘든 사회다. 쉬는 것조차 밀도를 극한까지 높인다. 꽃은 언젠가는 피고, 또 결국에는 진다. 기다리면 때가 온다. 빨리 좀 피라고 보챈다고 아직 때가 아님에도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반대도 똑같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일을 하는 동안 숨이나 한번 돌리자며 주변을 둘러보자. 그럼 바라던 대로 꽃은 피어있고, 또 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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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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