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짓을 꾸며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마음 [공연]

이 세상 모든 에반과 코너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
글 입력 2024.04.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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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에반 핸슨은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그의 상담사가 제안한 치료법 중 하나이다.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그러나 그의 하루는 썩 멋들어지지 않았다. 딱히 친구다운 친구도 없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조이 머피에게는 인사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힘듦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 편지를 쓴다. 그러나 학교의 다혈질 외톨이, 코너 머피에게 편지마저 뺏기고 만다.


코너가 그후 며칠 간 학교에 나오지 않자 에반은 불안해진다. 편지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놀림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곧 접하게 된 충격적인 소식. 바로 코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었다.


에반이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썼던 편지는 코너가 에반에게 남긴 유서가 되어 있었고, 어느새 에반은 코너를 기리며 ’우리 모두는 중요한 사람이며 당신이 외로울 때는 우리가 곁에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프로젝트의 부회장을 맡게 된다.

 

 

디어에반핸슨 포스터.jpg

 

 

지난 3월 28일 아시아 라이센스 초연의 막을 올린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불안 장애를 겪으며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외톨이 ‘에반 핸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지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 작은 거짓말은 조작된 이메일과 함께 차츰 그 몸집을 키워 간다. 어릴 적 집을 떠나 새 가정을 꾸린 아빠와 늘 바빴던 엄마 대신 마치 완벽해 보이는 코너 머피의 가족들 틈에서 에반은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멀리서 짝사랑하던 조이 머피와는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꿈같은 삶이다. 하지만 이건 모두 거짓말 위에 지어진 모래성에 불과했다.


자신이 코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거짓말이 에반에게 만들어준 친구, 명성,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애정을 쏟는 사람들, 그 중 어느 것도 진짜 에반의 것은 없다. 마치 새로운 삶을 사는 듯 행복해 보였던 그의 일상은 거짓이 들통날까 늘 불안했고, 에반은 ‘진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등 돌릴까 항상 두려웠다.


진실을 바로잡을 시기를 놓쳐 버리고 거짓이 만들어낸 따뜻함의 환상에 취해 있던 에반은 결국 모든 일이 틀어진 뒤에야 진실을 고백하고, 죄책감과 미안함에 짓눌린 채 자신에게 등 돌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무너진다.


그의 어머니 하이디 핸슨은 그런 에반에게 자신은 그가 어떤 모습이어도 언제나 그를 사랑하고,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듯 확신시켜준다. 에반이 거짓말을 했어도, 그가 힘든 것을 숨겼어도, 설령 삶을 포기하려고 나무에서 일부러 떨어져 내렸어도, 에반은 에반이기 때문에 이미 충만하게 사랑받고 있었다.


에반은 늘 진짜 자신으로서는 사랑받지 못할 까 불안해하며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버릴까 걱정했지만,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에반 자기자신이었다. 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며 가면을 쓰고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그 외롭고 가난한 마음이었다.

 

 

 

에반은 순전히 코너를 이용했을까?


 

아니 어쩌면 에반은, 성향은 다르지만 자신과 똑같이 외톨이였던 코너에게 진심으로 공감했을 것이다. 그도 분명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에반의 상상 속에서 그와 대화하는 코너 머피의 환상은,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코너에게 공감하고 스스로를 그와 동일시했던 에반의 속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오해와 거짓말에서 시작된 연극이지만 ‘코너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모두의 앞에서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연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꾸며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그 절박한 마음이 거짓의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은 맹목적인 갈망으로 바뀌어버렸고, 오히려 모든 전말이 드러났을 때 에반은 더욱 더 철저히 혼자가 된다.극 후반부 ’Words Fail’ 넘버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 혼자 남아 ‘저 빛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고민하는 에반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에반은 코너 프로젝트로 다시 열린 과수원에서 조이와 만난다. 몇 년이 흐른 뒤의 에반은 대학 편입을 준비하며 학비를 모으는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그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내지 않는다. 더 이상 지난 잘못에 매몰되어 죄책감에 파묻혀 있지도 않다.


다만 과거를 반성하며 코너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좋아했다던 책들을 읽고, 공부를 하고, 한 발짝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모든 힘든 일들이 아주 작고 아득히 먼 기억으로 느껴질 때까지,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있다.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적어도 오늘은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이고, 그걸로 충분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향한 사랑의, 타인과 세상을 향한 사랑의 첫 걸음이며 본질이다. 꾸며내지 않은 진짜 자기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 ‘빛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에반과 코너가, 외로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의 빛 속으로 발 디딜 수 있기를.

 

 

 

이소영.jpg

 

 

[이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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