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야속한 사랑의 타이밍 - 연극 '올모스트 메인'

참 어려운 사랑의 조건
글 입력 2024.04.0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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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장 좋아해 준다. 고작 그 정도의 조건인데도, 왠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등장인물이 짝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생각하며 되뇌는 말이다. 정말로 단순한 조건처럼 보이는데, 왜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짝사랑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다. 쌍방향의 관계에서도 저 조건은 생각보다 충족되기 어렵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첫째, 같은 단어로 표현되더라도 감정의 깊이는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사랑하더라도 그 사랑의 깊이가 다를 때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누군가는 가볍게 건넬 수 있는 한 마디 말이, 누군가는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입에 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전자의 사랑과 후자의 사랑은 같은 것일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조건은 충족되지 못한 채로 남는다.


둘째, 감정이 깊어지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깊어졌을 때 네가 아직 얕은 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 관계 역시 유지되기 어렵다. 각자의 이유대로 서운해지고, 지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 네가 원래 있던 얕은 곳에서 내가 있었던 깊은 곳으로 다가왔다고 한들, 내가 이미 그곳에서 떠났다면 다시 마주치기란 어렵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지만, 이번에도 조건은 충족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은 타이밍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와 나의 감정이 같은 곳에서 출발해 같은 속도로 깊어졌다면, 그리고 그 감정이 적절하게 깊어진 순간에 너와 내가 만났다면 저 조건은 충족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타이밍이라는 게 참, 언제나 모두가 그렇듯이, 신데렐라 구두처럼 딱 맞기가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포스터.jpg

 

 

올모스트 메인의 5번째 이야기, [호프의 희망 이야기]는 이처럼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긋나 버린 사랑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163마일의 거리를 달려온 여자, 호프가 놓친 것은 타이밍이다.


그가 바랐던 순간에 호프는 그의 곁에 없었다. 그것이 호프의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호프가 다시 그를 바라게 된 순간에 그는 호프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다. 둘이 서로를 원한 시점이 달랐을 뿐이다.


애절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호프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호프의 이름이 희망(Hope)을 의미한다면, 그 희망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긋나 버린 타이밍이 다시금 맞아떨어지는, 앞서 얘기한 조건이 다시 한번 충족되는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희망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잔인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 이름에서 떠올릴 수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또 다시 그런 타이밍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날 수 있다는 희망도 아직 있다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별을 겪으면서도 또 사랑을 추구한다. 내 인생에 찾아오는 저 마법 같은 타이밍이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프의 마지막은 씁쓸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언젠가 호프에게도 다시 그 타이밍을 꿈꾸게 되는 상대가 나타날 것이므로.

 

그리고 세상에 많고 많은 잘못 없는 이별을 대표한 이 호프의 이야기가,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한 사람으로서 바라기 때문이다.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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