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햇빛의 그을림으로 남은 기억, 애프터 썬 [영화]

글 입력 2024.04.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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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썬’은 소피가 현재 자신의 나이었던 아빠를 이해하고자 11살 때 아빠와 함께 했던 튀르키예 여행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되는 튀르키예의 모습과 아빠와의 추억이 실제 현실이 아니라, 현재의 소피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다.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캠코더에 남은 몇 편의 영상뿐, 그 공백은 소피의 그리움과 아버지를 이해하고픈 마음이 더해져 메워졌다.

 

이 영화는 내가 이제까지 본 몇가지 작품과 교점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기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버닝’ 과 유사한 점이 있으며,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마그다가 망원경을 통해 토메크의 사랑을 들여다본 것 처럼 캠코더의 영상을 통해 아빠를 이해하고자 했다.

 

소피와 관객은 과연 아버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이라는 사건 이전에 그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을까, 라는 궁금증을 공유한다. 아빠가 태극권과 명상에 대한 책을 읽고 어쩌면 혼자 남겨질 소피에게 호신술을 가르쳐 주었던 것, 창가에서 추락할 것 마냥 서있었던 것들을 자살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각색된 소피의 기억 속에 지배적인 색인 노란색과 대비되는 푸른색이 아빠의 심리를 잘 드러내준다.

 

이 색채 대비에서 이 영화의 미학적 탁월함이 잘 보인다. 실제 사물의 색이 노란색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피가 기억하는 한 물속에서 사진 찍고 놀던 카메라도, 스노클링을 할 때 입었던 보디슈트도, 동경하던 언니가 선물로 주고 떠난 팔찌형 입장권까지도 모두 노란색이다. 아름다웠던 기억과 그리움이 노란색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소피가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는 방은 따스한 노란색이지만 화장실에서 깁스를 풀려고 분투하는 캘럼은 차가운 파란색 안에 갇혀있다. 이때 화장실 문을 정면으로 두고 가위질을 잘못해서 흐르는 한줄기 선혈은 관객의 마음을 쿡, 찌르지만 바로 옆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소피는 성인 잡지에 빠져 그 선혈이 가리키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이렇듯 어린 소피는 여느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성적 호기심과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여행 도중에는 아빠의 고뇌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아빠의 흔적을 통해, 이를테면 튀르키예에서 구매한 카펫, 캠코더, 아빠의 편지 등을 통해 아이였을 때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아빠의 마음을 비로소 돌이켜 본다.

 

제목 ‘애프터 썬’의 의미 또한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프터 썬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를 선크림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햇볕에 타기 전에 바르는 선크림과 달리 이미 벌겋게 타버린 후에 뒤늦게 바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난 후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유사하다. 햇빛 아래에서 즐겁게 보낸 후 찾아온 쓰라림이라는 촉감과 햇볕에 그을린 흔적은 아빠를 보내고 난 후 그제야 그를 이해하고자 할 때 느끼는 공허함 및 후회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에서 아빠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 그것은 결국 소피의 내면의 이야기다. 감독은 이 영화가 ‘슬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슬픔을 초월하는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 한 바 있다. 이 영화를 다시 읽어보면 우울의 늪에서도 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했던 아빠와 먼 훗날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자 하는 딸의 사랑 이야기다.

 

나도 언젠가 부모님을 추월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들을 회상하는 나는 그들이 얼마나 나를 사랑해 주었는가, 그 아낌없는 사랑에 눈물짓게 되리라.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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