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들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요? - 수림뉴웨이브 2024 독파(獨波)

글 입력 2024.03.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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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올린 국악의 매력


 

수림뉴웨이브는 관객에게는 우리 음악의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는 수림문화재단의 전통예술 공연제로, 2024년 2월 22일부터 10월 24일까지 6개월 동안 김희수 아트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스무 명의 예술가를 만난다. 지난 3월 21일, 지난해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황민왕 타악기 연주자의 공연을 보았다.

 

처음에는 고독 속에서 울리는 악기 소리와 음악가의 목소리가 몽환적으로 들렸다. 그러다 오픈채팅 방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관중들의 바람을 음악으로 승화해 읽어주는 형식으로 넘어갈 때 곧바로 내가 속한 그 공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소원이 나의 소원인 것 같았고, 그 모든 염원이 내게도 통해 나 역시 황민왕 음악가의 축복을 받은 느낌이었다.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그가 그날 주로 사용한 악기는 장구였다.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때 운동회를 위해 풍물을 연습했던 기억이었다. 그때 내가 맡은 악기도 장구였다.

 

운동회를 앞두고 몇 주 동안 오후 수업 시간을 풍물 연습 시간으로 대체했었다. 매일 좁은 체육관에서 모여 장단을 익혔고 나중에는 복잡한 동선에 맞춰 달리면서 악기를 연주했다. 어떤 장단은 너무 휘몰아치듯이 전개돼서 악에 받치듯이 연습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 그때 그 장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덩 다다 쿵다쿵, 덩 다다 쿵다쿵...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와 스피커도 없는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됐다. 요즘 부쩍 연주회를 자주 보게 되면서 인위적인 기계음 없이 악기가 내는 소리를 그 자리에서 듣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타악기 연주를 듣는 건 또 다른 종류의 경험이었다. 음악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는 선율이라고 생각했는데, 악기를 두드리는 행위만으로 음악이 완성되다니 마냥 신기했다.

 

작년 여름 퍼커셔니스트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악기 연주라고 하면 피아노나 현악기 연주만 익숙했는데 여러 종류의 타악기를 두드리는 연주자를 보며 음악의 지평을 넓힌 기분이었다. 황민왕 음악가가 열성적으로 두드리는 장구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선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국악으로 장르가 변주되었다는 것 정도.

 

장구의 어느 부분을, 어떤 강도로 두드리냐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소리가 나오는지 그날 공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앞자리에 앉아서 공연하는 모습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한 가지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그의 섬세한 연주 테크닉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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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요?


 

대담 시간에 한 관객이 팔이 많이 아플 텐데 운동은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황민왕 음악가는 운동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며 이제 정말 해야겠다고 답했다. 그 대담 이후로 이어진 공연에서 음악가의 팔이 얼마나 아플지 의식하면서 봤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의 핵심 기반은 체력인데 국악 연주도 예외는 아니구나. 고통을 참으면서 황홀한 연주를 보여주는 음악가는 정말 참된 직업인이구나.

 

언젠가 공연예술은 창작자가 작업물을 만드는 시간과 내가 그 작업물을 즐기는 시간 사이에 시차가 없어 좋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영화나 소설, 그림 등은 작업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창작자가 마침표를 찍고 세상에 발표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그 글을 본 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클래식 공연이든 관람할 때마다 예술가가 내 눈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날 황민왕 음악가도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내 앞에 섰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장구를 연주하던 그는, 수림문화재단의 기획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다른 세상에 사는 신비한 예술가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일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업인이었다. 그날도 열심히 일하는 그를 보면서 일과 삶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작년 여름 퇴사한 이후로 일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숙제하고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평생을 살던 나는 사무실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치우는 직장인이 되었다. 시험을 통해 성적을 받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때그때 성과를 인정받는 학생 때와 달리 누구도 나의 성취를 인정해 주지 않는 회사에서의 삶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웠다.

 

짧지 않은 시기 동안 다닌 첫 회사를 그만두고 8개월 동안 온전한 나로서 시간을 보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나를 대변할 직업이 부재한 상태에서 여행도 가고, 문화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서 살았다. 처음에는 퇴사하고 잠시 쉬는 중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 중간에 단기적인 업무를 경험하고 다시 일을 쉬게 됐을 때 언제까지 내 지금 상황을 ‘구직을 유예 중인 상태’로 정의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단지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완전하다고 정의하기엔 나는 너무나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 외에도 나의 삶은 수많은 것에 의해 정의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 취미, 공부하는 학자,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등 일과 관련되지 않아도 많은 요소가 나의 삶을 가득 채웠다. 일을 할 때는 나의 자존감이 일에 달려 있었다. 일이 안 풀리면 절망에 빠졌고 일이 잘 풀리면 그제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평가 대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돈을 받으면 그에 걸맞은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월급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나의 노동력에 가치가 있어야 한다. 나는 오랜 시간 내 노동력의 가치를 의심하며 내 존재 가치도 스스로 훼손했다. 그러나 일에서 벗어난 나는 값싼 노동력을 지닌 노동자가 아닌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었다.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고, 폭넓은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일 밖의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덜 싫어할 수 있는 인간상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는 법. 최근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일이 삶의 전부인 건 아니지만, 일이 주는 돈이 있어야 삶이 유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일 외에 여러 요소가 삶을 이루는 걸 알아도 일을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불안하기 마련이다. 어디에도 쓰임이 없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지 않는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이 전쟁 같은 인생을 견딜 수 없었다.

 

긴 회피를 끝내고 인생을 책임져야 할 때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예상보다 더 쉽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서툰 행동을 보여주는 시간을 의연하게 보내기엔 나의 내면은 너무 연약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움츠러들고 비관하는 나와 달리 황민왕 음악가는 그만의 유머러스한 태도로 녹록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라고 해서 일이 쉽기만 하겠는가. 내가 현장에서 그와 만났다고 해도 결국 완성된 결과물만 볼 수 있는 거고, 일에 대한 진정한 고충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연습 시간이나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것이다.

 

고작 한 번의 관람만으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일에 임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모든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지금까지 지속했다는 것이다. 대담을 통해 황민왕 음악가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담을 진행한 수림문화재단의 직원이 음악가와 친분이 있는 사이라서 그런지 편한 사석에서 친한 선후배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친근한 대화를 통해 그날 무대에서 공연한 것 말고도 제자를 양성하고 음원을 발매하는 그가 부지런히 해내는 또 다른 일을 전해 들었다. 내가 모르는 그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한 번 일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하니 대담의 진행자도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이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을 해냈을지 궁금했다. 내가 즐겁게 관람하는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수림문화재단의 직원과 음악가 모두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내 눈엔 마냥 완벽하게만 보이는 저들도 일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심하던 순간이 있었을까. 나처럼 저들도 수시로 차오르는 자기 의심, 무기력, 공허함, 분노를 겪으면서 일을 해내는 걸까.

 

일이란 뭘까. 일이 뭐길래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면서 나를 살게 하는 걸까. 일이 뭐길래 수시로 나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동시에 나를 붙잡기도 하는 걸까. 왜 일은 싫으면 싫은 대로 괴롭고 좋으면 좋은 대로 괴로울까. 그런데도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을 제공하는, 일이란 대체 뭘까.

 

공연을 보고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 중이고, 일에 대한 고민은 해결되긴커녕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오늘도 나는 작은 자극 하나에 나를 찍어 누르고 불안에 떨었다. 몸은 편하지만 정신은 고된 시간을 보낸 뒤 카페에서 온 나는 황민왕 음악가의 공연을 회상하며 일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지키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초라한 노동자였던 나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애호가가 되었고, 그 덕분에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 싫어졌다.

   

잠시라도 나를 일에서 꺼내준 성실한 직업인 황민왕 음악가와 수림문화재단의 직원들이 고마운 밤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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