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가벼움과 무거움 - 블루 발렌타인 [영화]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혹은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글 입력 2024.03.2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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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해 논할 때 운명과 우연은 결코 빠지지 않는 대립항으로서 자주 거론되고는 한다. 우연으로 시작한 사랑이 생애 곳곳의 운명으로 점철되는 경우, 사람들은 그 사랑의 시작이 운명적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거나 혹은 운명이라는 벽에 기대어 의도적으로 사랑의 착각 속에 빠진다. 운명으로 시작한 사랑 역시 사랑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우연들이 켜켜이 겹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운명에 대한 회의감을 자아내도록 만든다.

 

무엇이 운명이고 무엇이 운명이 아니었을까? 사랑은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나아갈까?

 

나는 <블루 발렌타인>이 어째서 사랑의 현실적인 부분들을 압축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로 취급받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기에 지독히도 현실적인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의 위태로운 사랑과 결혼 생활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무엇으로 낙착이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나아가는 장면들이 나열되다가도 이내 다시금 가벼움만이 가득해지는 상황들. 딘이 신디를 뒤로 한 채 눈물을 삼키며 멀어져 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나는 이러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다른 하나의 소설과 영화의 물감을 빌려와 이 영화를 덧칠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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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운명은 무거움으로, 우연은 가벼움으로 치환해 보자.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을 역설하고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토마시와 사비나는 우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유를 향해 달려나가는 사랑을 그린다. 반면 테레자와 프란츠는 운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종의 교조적인 책임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랑을 꿈꾼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프란츠는 사비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소설 속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라는 화자의 말처럼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비나는 프란츠를 언어로써 이끌어낸다. 요컨대 가벼움과 무거움이 인물들의 사랑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한다.

 

<블루 발렌타인>의 딘과 신디는 과연 어떻게 그들만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보여주었을까.

 

예컨대 그들은 서로의 부모로부터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 환경을 제공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쪽 집안의 부모가 어떠한 삶을 거쳐왔고 어떻게 불화 혹은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떠올리는 것은 무거움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얼마나 커다란 비애와 고뇌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딘과 신디가 끝내 결별을 택하는 것은 가벼움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책임 의식이 결여된 결별의 가벼움이다. 결국 그들의 딸 프랭키는 딘과 신디가 그러했듯 부모의 이혼을 평생토록 무거움으로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무엇이 부족했을까. 신디는 딘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음악과 예술성에 대한 자유로운 열정을 기다렸고, 딘은 신디가 알아주지 않는 가장으로서의 현실적인 무게를 본인의 언어로 토로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조금만 더 대화를 이어갔다면 그들의 사랑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가벼움과 무거움 너머로 하루 만에 사라진 결혼과 육아의 책임감이 더욱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위 내용의 연장선에서 다시금 가벼움과 무거움의 공존을 보여준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까닭에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충분하다고 해도 그 진실한 사랑이 남기는 감동만큼은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처럼 뜨겁고 진심 어린 사랑의 마지막 순간에서 프란체스카는 어떤 이유로 킨케이드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 당장은 '무거움'으로 보이는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가벼움'으로 퇴색되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다 보면 다 똑같다는 말. 고리타분한 경구처럼 여겨지는 이 말이 어쩌면 때로는 명료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이야말로 무거움일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가정을 떠난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떨쳐낼 수 없는 무거움일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거요."

 

그들이 나누었던 바로 그 확실한 감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무거움으로 남을 수 있었고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무거움만이 옳은 것은 아니고 가벼움만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무거움은 가벼움을 낳고 가벼움은 무거움을 낳는다. 그러나 책임이 무거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면, 사랑이란 인생에서 주어지는 숱한 가벼움들 속에서 결코 놓지 못할 하나의 무거움이 아닐까. 신디가 낙태 수술을 받던 도중 출산을 결심했던 순간의 무거움이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자식이라는 무거움을 불러왔듯이, 그들이 선택한 이혼의 무거움은 프랭키에게 얼마나 더 큰 무거움을 안겨주게 될까.

 

사랑은 무겁고 그래서 결혼은 더 무겁다. 그런 까닭에 내게 있어서 <블루 발렌타인>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함께 앞으로도 지독하게 무거운 영화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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