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법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 - 올모스트 메인 [공연]

어쩌면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법 같은 일 아닐까
글 입력 2024.03.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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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났음에도 꽃샘추위로 쌀쌀한 봄, 여전히 눈 내리는 겨울밤인 올모스트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 올모스트에 90분간 머물면서 여덟 커플의 다양한 사랑을 지켜보았다.


흔히 ’사랑‘이라 하면 분홍빛의 벚꽃이 휘날리는 봄을 떠올리곤 하는데, 다양한 사랑이 넘치는 올모스트는 눈 내리는 겨울이다. 하지만 올모스트는 전혀 춥지 않았고 오히려 봄보다 훨씬 따뜻했다.


어느 추운 금요일 밤, 올모스트 메인에서 펼쳐지는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는 결말이 없다. ‘올모스트’라는 마을 이름처럼 그들의 사랑을 모두 보여주지 않고 ’거의‘ 보여준다. 이후의 이야기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


모든 배우가 2개 이상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닮은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분명 같은 공간임에도 에피소드마다 다른 장소처럼 느껴지는 연출 역시 인상 깊었으며, 맨 앞에서 감상해서 그런지 벽면에서 오로라가 일렁이는 연출은 마치 오로라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참으로 아름다웠고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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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남녀. 하지만 둘은 섣불리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아마도 둘은 사랑이 처음인 듯하다. 그러다 여자가 먼저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다가 서로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런데 남자가 농담을 던진다. 여자는 남자의 농담에 마음이 상하고 어렵게 가까워졌던 물리적인 거리가 다시 멀어진다. 남자는 계속 같은 농담을 하고 이내 여자는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멀어진다. 과연 둘은 가까워졌던 거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참 풋풋하면서도 답답하고 괜히 피식 웃음이 나는 사랑 이야기였다.

 

 


돌려줘 


 

결혼을 원하는 여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남자를 보며 끌을 내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본인이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주며 자신이 줬던 사랑도 돌려달라 말한다. 사랑을 돌려주길 망설이던 남자는 결국 사랑을 돌려주지만, 여자가 돌려준 것보다 훨씬 작다. 여자는 그 오랜 시간 자신이 준 사랑이 이렇게 작지 않을 거라며 부정하지만, 그 작아 보이던 사랑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반지였다. 너무나 많았던 사랑을 한데 모이는 방법으로 남자는 반지, 즉 결혼을 택한 것이다. 여자는 기뻐하며 청혼을 받아들인다. 과연 결혼 이후에도 둘의 사랑은 계속 이어질까?


사랑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사랑의 양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했고, 실제로 사랑은 보이지 않고 크기로 잴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오랜 시간 함께 한 장기 연애 커플이 겪는 현실적인 고민 중 하나는 결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을까? 해피엔딩임에도 해피엔딩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본다는 것 


 

친구 사이로 지내 오던 두 남녀. 누가 봐도 여자를 친구로만 보지 않는 듯한 남자가 여자에게 그림을 선물한다. 그런데 여자는 그림을 봐도 남자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너무나 답답했던 나머지 남자는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이후 실랑이를 벌이다 남자는 또 선을 넘으며 마음을 표현하고, 여자는 그림을 다시 본다. 드디어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오랜 친구였던 두 사람의 사랑은 친구일 때와 많이 다른 모습일까?


끝까지 그림을 보여주지 않아 궁금증이 폭발했던 에피소드였다. 남사친과 여사친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논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더 흥미로웠고 모든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공감하면서 볼 것 같은 이야기였다. 빨간 심장이 그려진 그림에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장면은 둘의 사랑이 앞으로도 해피엔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아파 


 

세탁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자가 여자가 휘두른 다리미판에 맞게 된다. 그런데 남자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남자는 무통각증을 앓고 있다. 우연히 남자의 비밀을 알게 된 여자는 자꾸 고통도 못 느끼고 모자란 사람이기에 자신은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에게 사랑을 알려주듯 키스하는데,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는 여자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랑과 너무 다르다며 혼란스러워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다시 다리미판에 맞은 남자는 처음으로 통증을 느낀다. 과연 두 남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고통을 알게 된 남자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인가?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에피소드였다. 어쩌면 남자는 선천성 무통각증이 아니라 형의 가스라이팅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물론 사랑받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기에, 즉 사랑을 몰랐기에 통증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사랑으로 인한 고통이 아닐까.

 

 

 

호프의 희망이야기 


 

한 여자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왔지만, 첫사랑이 아닌 모르는 남자를 마주한다. 하지만 여자는 바로 떠나지 않고 그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대답도 하지 않고 떠나버렸던 이야기를 말이다. 여자는 과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다시 찾아왔지만 이미 그는 없다. 그런데 다시 보니 모르는 남자가 바로 여자가 찾던 첫사랑이었다. 여자가 못 알아봤던 이유는 남자가 희망을 모두 잃어버려서 작아졌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무책임하게 대답도 하지 않고 떠나간 이후 남자는 하루하루 희망을 잃어가고 상처만 쌓여갔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여자가 다시 찾아왔지만 이미 남자의 옆에는 다른 이가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크게 원망하지 않고 진심으로 마지막 말을 남긴다. “찾길 바래, 네가 있어야 할 곳.” 과연 여자는 첫사랑을 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다. 여자의 대답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어갔던 남자가 너무 안타까웠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은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를 원망하지 않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앞으로의 나날을 응원해 주는 남자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만약 여자가 바로 대답을 하고 떠나지 않았다면, 둘의 사랑은 계속 이어졌을까? 이런 생각은 무의미한 것 같다. 이미 여자는 사랑보다 새로운 세상을 선택하였고, 당시 여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마냥 그녀를 탓할 수도,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정말 사랑은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다.

 


 

슬픔과 기쁨 


 

한 클럽에서 남자가 옛 연인과 재회한다. 왠지 남자는 여자에게 미련이 많은 듯하다. 남자는 본인의 장점과 자랑거리를 내세우면서 허세를 부린다. 하지만 여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남자는 끝까지 미련을 보이지만, 여자의 말을 듣자마자 슬픔이 극에 달한다. 여자가 결혼을 앞두고 있단다.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여자를 붙잡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남자는 결국 여자를 보내주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여자를 만난다. 이것은 운명이다. 남자는 이제 슬프지 않다. 오히려 너무 기뻐서 문제다. 과연 남자는 운명을 느낀 그녀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보는 내내 관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에피소드였다. 극 중 남자의 허세를 부리는, 슬픔을 표현하는 대사와 과장된 몸짓 하나하나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여 슬픔에 빠졌다가 곧바로 다시 새로운 여자를 만나 기쁨을 되찾는 모습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뭔가 드라마에서든 현실에서든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가장 마음 편히 봤던 것 같다.

 

 

 

빠졌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사이인 두 남자가 각자 데이트에 실패한 이야기를 나눈다. 두 남자는 상상치도 못한 전개로 여자와의 데이트를 망친다. 정말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는 불운 그 자체다. 그런데 한 남자가 친구에게 ’세상에 좋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너야‘라며 고백한다. 친구는 고백을 외면하지만, 끝내 화를 내면서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 계속해서 쓰러진다. 일어나서 버티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과연 두 친구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진정한 사랑을 찾고 불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는 둘이 안간힘을 써서 일어나려 해도 쓰러지며 끝나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생각해 보니 둘이 서로를 마주하며 쓰러지는 모습은 사랑에 빠지는 관계를 표현한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그렇다. 사랑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심장 


 

한 여자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올모스트 메인에 찾아온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 남자의 집 마당에 침범한다. 그런데 남자는 자신의 집을 침범한 여자가 싫기는커녕 흥미롭다. 그렇게 남자는 여자에게 서서히 다가가다가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는 멈칫한다. 바람을 피우고 죽은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오로라를 보러 왔다는 여자. 심지어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고 심장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자신이 용서하지 않아 남편이 죽게 된 것이라며 자책한다. 남자는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면서 자신이 그 마음을 고쳐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을 배웅하고 여자는 왠지 모르게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과연 여자는 심장을 완전히 치유 받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감정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마음은 심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심장은 사랑과 연관되는 단어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렇게 언제나 함께 언급되는 심장과 사랑을 연결한 부분이 인상 깊었고, 여자의 상처가 더욱더 와닿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여자는 심장이 산산조각났음에도 살아있다. 하지만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이다. 심장이 고장 났기에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런데 고장 난 이유가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즉, 사랑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의 사랑으로 치유받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으로 얻은 상처는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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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모스트 메인에서 펼쳐지는 여덟 가지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열린 결말로 끝난다. 이는 곧 사랑에 완성이란 없다는 뜻이 아닐까. 사랑에 완성이 있다 해도 사랑의 완성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너무나도 어렵다.


또한, 사랑은 이별, 슬픔, 기쁨 등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아파]라는 에피소드에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던 남자가 사랑을 통해 고통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올모스트 메인 속 사람들은 사랑을 계속 이어나간다. 슬픈 결말로 끝낸 에피소드에서도 사랑을 끝내 배제하진 않는다. 어떤 형태일진 모르겠으나 이후에도 사랑은 계속 존재할 것 같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마법‘ 같은 여덟 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 같다. 아마 사랑 그 자체가 마법 같은 것이기 때문일까. 사랑은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우연히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오기에 마법 같은 일인 동시에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랑을 하는, 사랑을 했던 혹은 사랑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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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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