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사유적 독서를 피하라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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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사실상 성찰을 요구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무엇인가? 행위와 행위자 간의 이분법적 구도 하에서 악을 정의내리고 그것을 '무사유'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최종적으로는 공동체 사회의 핵심적 가치를 연설하는 것이다. 아이히만이라는 평범한 남성이 나치즘에 세뇌되어 자신의 책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끝내 반성을 하지 못한 채 사형당하는 하나의 일대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 책을 완전히 정독하고 그 메세지를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무사유'는 비단 아이히만과 같은 전범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타인의 언행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 또한 '무사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는 오히려 책 밖에 있다.

 

예컨대 한스 요나스라는 철학자의 '예견적 책임'과 '반성적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이 책에 접목시킨다면 매우 훌륭한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러한 깊은 사유는 오로지 독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며 책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책 밖에서 끌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미완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을 완성시키고 마지막 방점을 찍는 몫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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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어느 현대문학비평에 실린 문구를 언급하고 싶다. 그 문구의 내용인즉 현 시대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죽고 독자의 위상은 더욱 올라가 독자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보다 더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조금은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나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배제된 독서는 이미 실패한 독서이며 죽은 독서이다.

 

만일 '아이히만은 단지 전범이고 악인이며, 따라서 처벌을 받은 것이고 책임을 진 것이다'와 같은 맥락의 평가를 내렸다면 이것이 바로 실패한 독서의 표본이 될 것이다. 그 책임의 양상을 두 갈래로 나누어 무엇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무엇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이겠으나 저자는 '반성적 책임'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역설하고 있다. 예견의 실패보다는 반성의 실패가 무사유적인 삶을 더욱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초반부에서 '성찰'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진 이유이다.

 

우리는 공동체 사회를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가 매순간 저지르는 잘못과 악행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독자의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성찰만이 이 책의 내용을 완성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저자의 메세지를 발판 삼아 그 너머를 보는 눈을 갖게끔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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