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 속 나의 채도를 낮추는 법 -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글 입력 2024.03.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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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 비활성화를 했다. 그나마 내가 마지막으로 하던 SNS를 끊어낸 셈이다. 계정 영구 삭제는 아니니 언제든 다시 활성화할 수 있겠지만, 로그아웃된 상태뿐만 아니라 앱까지 지우면서 나는 나름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하나 끊었다고 생각했다. ‘계정 비활성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잠시 쉬고 싶음’을 선택한 나의 마음을 상기하며.


정보의 홍수, 과잉 정보의 시대, 정보 중독자…. 이런 말은 너무 많이 들었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쏟아지는 연락과 정보 속에서 이와 단절되고 싶다는 욕망은,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유희도 느끼지만, 피로함도 느끼고, 과시도 하지만 결핍도 마주한다. 대외활동 하나만 하려고 해도 SNS가 필요한 시대, 나의 존재성을 끊임없이 어필하는 건 당연히 여겨졌지만, 오히려 그 행태가 모든 사람의 디폴트 값이 되며 그 반대의 가치를 가지고 싶기도 했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걸 그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와 힘이 있는 조건으로 여길 수 있을까?

 

p23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저자인 아키코 부시(이하 부시)가 책 초반부에 제시한 이런 개념은 나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일으켰다. 다른 사람들 멀쩡히 잘하는 걸 나만 안 하려고 하고, 나만 숨으려고 하는 게 회피나 도피가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나에게, 부시는 아니라고 말해준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건 고립이나 무의미한 순응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오히려 더 적극적인 노력일 수 있다는 것.


 

자연에 파묻히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는 듯하다.

자연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약점이 아니라 힘이 된다.

 

p45

 

 

자연에서 우리가 새나 동물의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자연의 일부가 된 듯 고요하게 움직인다. 그 자연 속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눈에 띄면 포식자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많은 동물은 그 자신을 숨기는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 대표적인 예시가 환경에 맞게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 그것이 생존 본능.


나에게 자연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성적을 내고 등수를 매기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대체로 앞쪽에 위치했던 것 같다. 그 환경에서는 내가 숨겨지는 것이 절대 내가 잘하는 것이 될 수 없었다. 잘하면 어쨌거나 선생님이, 친구들이, 누군가가 알게 되고 나는 교실 앞 혹은 교단 앞에서 상장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내가 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숨겨진다면 그건 내가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보니 잘한다는 것은 튀지 않는 것이다. 튀지 않게 생활해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잘하는 사람, 잘 사는 사람은 정말 많다. 오히려 튀지 않고 사는 것이 그 세상에 어우러지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범죄와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이 자연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그저 여겨지고 싶다.


 

“우리는 서로 보고 있다We are seeing each other”는 사귀고 있다는 뜻이고, “또 봐See you”라고 작별 인사를 할 때는 당신이 보이고, 다시 보일 거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들이다.

 

우리는 보고 보이기 위해 산다.

 

p91

 

 

<에디톨로지 : 창조는 편집이다> 책에서는 “돈이 생기면 좋은 곳에 별장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선을 소유하기 위해서다. 먹고살기에 바쁜 때는 시선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삶의 여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시선을 구매한다.”(p177)고 말한다. 시선은 권력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선을 구매하고, 또 시선을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모두가 한강 뷰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고, 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싶어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사랑, 명예, 건강…. 보이는 것에서 우리의 관계는 모두 시작하지만, 이를 통해 보이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것들을 형성한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보고 보이기 위해 사는 삶에서, 보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때. 나는 나의 자유로운 건강함을 얻을 것 같다.


 

“내가 본 식물 중 가장 식물 같지 않아.”

남편은 잠시 눈을 굴리더니 덧붙였다.

“이 식물은 영원히 자란다고 묘목상이 그랬어. 그것도 맞는 말 같아.”

 

p112

 

 

보이지 않는 상태가 무시당하거나 묵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롯이 직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직하려 한다. 나는 내가 늙는 게 싫어서 ‘이 나이에는 죽고 싶다’는 나이를 서른이니 마흔이니 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부시는 자아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유전적인 특성과 학습된 행동 등을 닥치는 대로 무작위에 모아놓은 것에 더 가깝다고 한다. 자아를 하나의 실체로 말하는 그 단일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당신의 자아가 작아질 수 있다면 당신 삶은 얼마나 커질까?

(…) 당신은 멋진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더 자유로운 하늘 아래 있을 것이다.

G. K. 체스터턴

 

p314

 

 

경외심과 경이감을 통해 자아가 작아진다고 느낄 때 더 관대하고 친사회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인간적인 차원의 물리적 규모로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원초적 본능에서 벗어나는 경험. 부시는 이것이 정신적·감정적 확신이 사라질 때 일어나며 여기에서 자유가 시작된다는 ‘신성한 소멸’과 비슷한 개념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이 드넓은 우주 속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고 미약한지 느낀 적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별이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곳이었다. 그런 광경은 살면서 정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별을 계속해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별과 나 사이의,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졌다. 급속도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내가 이 세상 속에서는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내가 영향을 하나도 끼칠 수 없는 이 대자연 속의 나를 인지하며, 두렵기도 하고 동시에 또 안도하기도 했다.

 

 

이런 여정을 통해 나는 자아가 사라질 때 우리의 공감하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p45

 

 

한 번도 자아가 실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자아를 단단하고 견고한 집합체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아는 유동적이고, 정체성은 한순간 어느 부분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럼 어쩌면 나라는 존재의 일부 소멸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노화도 어쨌든 상실하며 퇴보하는 것이니까. 나의 사라짐을 인정하면 어쨌든 이 세상의 사라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결국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사라짐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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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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