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하고도 시적인 낯섦,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의 호러 단편집
글 입력 2024.03.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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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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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변소설계의 거장 브라이언 에븐슨의 호러 단편집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하빌리스, 2024, 이유림 옮김)의 책장을 덮은 뒤에야 출판사 서평을 읽어봤다. “공포가 문학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구절 위로 눈길이 머물렀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뒤 뇌리에 남은 인상이 예상과는 사뭇 달라서였을까. 충격이나 공포, 섬뜩함보다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일반 소설도 아닌 스릴러 소설보다는 판타지나 시를 읽은 후에 남는, 불쾌와는 거리가 먼 뒷맛이었다.

 

호러 장르에서 공포라는 감정만 우선한다면 문학은 영상매체 등의 다른 미디어를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처럼, 호러 장르의 문학 작품에는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공포 이상의 깊이가 있다. 에븐슨의 작품관 안에서도 공포라는 감정은 그저 독자에게 전해야 할 1차원적인 목표가 아니라, 문학성을 배가시키는 매개체다. 그래서 이 작품을 그저 호러 소설이라고만 칭할 수 없는 이유를 살피기로 했다.


 

 

짧은 호흡 너머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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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Stefano Pollio

 

 

그 실마리는 이곳저곳에 있다. 가장 먼저, 목차부터 평범하지 않다. 일반적인 단편집보다도 훨씬 조밀한 구성이다. 겨우 2페이지 분량의 단편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20페이지를 넘지 않는 호흡이었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층위와 풍부한 갈래의 상상력을 집약적으로 엿볼 수 있다. 브라이언 에븐슨의 소설은 처음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심긴 다층적인 세계관을 압축한 후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렇기에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전반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풍부함이었다. 서술방식 역시도 1인칭의 심리묘사와 사건 위주의 전개를 넘나들며, 세계관 역시 우주적 스케일의 SF부터 초자연적인 주제, 때로는 다소 엽기적이더라도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사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등장인물들 역시도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닌 기묘한 존재이거나, 혹은 둘의 조우를 다루는 등 SF와 스릴러라는 두 가지 무기로 펼쳐낼 수 있는 최대치를 선보인다. 동시에 ‘꿈’이나 ‘쌍둥이’, ‘껍질’ 등 두 편 이상의 단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작가의 일관된 세계관을 상상하게 하는 연결고리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모른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몰랐다. 자신이 딸을 데려오긴 했지만, 아니, 이들의 말처럼 딸을 납치했다고 해도 그 뒤에 아이가 사라졌고, 그는 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딸을 죽였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딸을 깊이 사랑했다. 딸을 죽였을 리 없었다. 저들은 대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의심을 하는 것일까?”] - p.59, 세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래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모두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필립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찍고 있는 장면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모두 정상이 아니며, 그 인물들의 감정이 스태프들에게 옮아가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 p.101, 룸 톤

 

["라르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몸을 돌리자, 또 다른 안락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남자의 피부는 어딘가 이상했는데, 기묘하게 걸쳐져 있는 듯했으며 손가락과 팔꿈치 쪽은 너무 헐거웠고 다른 곳은 지나치게 팽팽했다. 얼굴도 기이했는데, 마치 피부가 얼굴뼈와 어긋난 것 같았다. 한쪽 눈은 기괴하게 늘어나 너무 넓게 벌어졌고 다른 쪽 눈은 피부가 접히는 바람에 감겨 있었다."] - p.33, 새어 나오다

  


 

독자의 몫


 

단편과 스릴러라는 특성을 총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작품의 템포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독자의 ‘몰입도’가 중요하다. 소리와 감정, 냄새까지 모든 장면을 마치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리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새겨야 이 소설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보다 문학적 깊이가 얕다고 취급될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도리어 더 깊은 차원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짧은 문장이라도 소홀히 지나치는 순간, 작가의 집약적인 세계관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앞서 발췌한 문단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책장 너머의 장면 안에 빠져드는 것은 ‘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에서만큼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책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시간대나 공기, 음악처럼 적절한 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풍성한 차원의 몰입이 가능하다. 삶의 평범한 기운으로부터 벗어나 기묘하고도 시적인 낯섦에 매료되고 싶다면, 또 저차원적인 자극이 아닌 색다른 공기의 호러를 맛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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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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