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시간을 거쳐 나는 네가 되었다 - 연극 비Bea

이 극이 가진 힘
글 입력 2024.03.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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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죽음을 바라는 여자의 이야기. 이 한 줄의 정보만을 가지고 찾아간 극장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분명히 저 사람이 주인공 맞을 텐데, 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는 당황스러움 속에서 극이 시작되었다.

 

 

24 비Bea_비_이지혜.JPG

 

 

당황스러운 느낌이 가실 즈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그의 몸짓에 눈길이 갔다. 침대 위에서는 거침이 없지만 침대를 제외한 공간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 보이는 동작. 침대 밖으로 손발을 내밀어 보지만 이내 밀려나는, 마치 침대를 둘러싸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림막이 있는 듯한 느낌에 점차 가슴이 답답해졌다. 경쾌한 음악 소리가 귀를 사정없이 때리고, 온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침대 위를 뛰어다니는 배우가 눈앞에 있는데도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처럼 모순된 느낌을 안겨준 채 시작된 극은 그 이후로도 썩 친절하지 않았다. 피로할 정도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대사들을 놓치지 않는 것도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에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비'와 엄마 '캐서린'의 대화가 그랬다. 분명히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각자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대화가 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이게 기분 탓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헷갈리는 와중에, 그런 나를 기다려줄 수 없다는 듯 이야기는 빠른 템포로 전개되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따라가는 수밖에.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극은 벌써 중반을 넘어가 있었다. 이 숨 가쁜 질주를 열심히 따라간 관객에게 주는 보상이었을까,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단서들이 조금씩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비'의 말과 행동, '비'와 '캐서린'의 대화, '레이'의 행동에서 느껴졌던 위화감이 하나둘씩 걷혀 나갔다.

 

위화감을 느꼈던 순간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눈앞에 드러난 진실은 생각보다 더 잔인했지만.

 


24 비Bea_캐서린_강명주.JPG

 

 

만약 이 극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앞서 언급했듯 친절한 극은 아니었던 터라, 조금은 더 편하게 극을 대하고 초반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극을 이해하려고,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애썼던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이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극이 목표했던 것이 이야기 전체를 매끄럽게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비'의 마음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데에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극이 시작할 때 느꼈던 무거움이 해소되는 마지막 순간, 나는 관객이 아닌 '비'로서 그 자유를 즐겼다. 흘러나왔던 눈물은 슬픔보다는 후련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알려고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이 극에는 있다.


지금 당신이 누구이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고 있든, 당신도 비(Bea)가 될(Be) 수 있다. 그것이 이 극이 가진 힘이기에.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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