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무의 속도란?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시인의 언어로 담아낸 나무의 모습
글 입력 2024.02.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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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푸른 잎사귀가 가득한 나무를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시사철 푸르른 활엽수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꽃이 활짝 핀 나무를, 또 다른 이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겨울나무를 생각할 것이다.


'나무'를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호수이다. 오래된 절의 앞마당이나 마을 어귀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 넓게 뻗어 공간을 품어주는 듯한 가지와 성인 여럿이 팔을 벌리고 둘러 안아도 버거울 정도로 두꺼운 몸통 줄기가 그동안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몇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그저 한곳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온 나무를 바라보면 그 위엄과 생명력에 절로 경건해지게 된다.


[누구도 나무를 보챌 수 없었고 "서둘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부러움과 감탄, 닮고 싶은 열망을 담아 이것을 "나무의 속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에 질려버렸다. 나무의 시간을 살고 싶었다.] (12p)


이 책의 저자 수마나 로이도 나무만의 속도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이 책의 첫 장 '나무의 시간으로 살기'에서 그는 속도에 질렸다고 말한다. 인간의 속도,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변화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는 한때 편리했을지 몰라도 이젠 피로함이 더 크다. 반면 나무는 한자리에서 우직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수마나 로이는 인도의 가장 독창적인 현대 시인으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자국에 존재하는 계급과 명예 살인, 성차별과 폭력 문제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항상 인간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탐구하는 작품을 써왔다. 나무의 삶을 추구하는 그의 가치관과 시인으로서의 은유적 상상력이 더해져 이 책은 다양한 나무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저녁이면 나는 벌판에 나가 내 그림자를 펼친다. 어스름 내리는 땅 위에서 팔다리와 그 그림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노닐고, 각도와 빛과 그 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운 좋은 날이면 나와 내 그림자는 어느새 나무가, 그것도 막 새잎이 움틀 것만 같은 가지를 마음껏 펼친 나무가 된다. 물론 나는 여전히 나무가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적어도 나는 나무의 그림자로 다시 태어났다.] (123p)


어린 시절 창문으로 들어온 야자수 이파리의 그림자를 느끼며 수마나 로이는 자유를 꿈꾸게 되었다. 자연 그 자체를 말하는 나무의 리듬, 차별하거나 차별 당하지도 않는 나무 세계의 방식에 매료된 로이는 나무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를 풀어냈다.

 

잎사귀같이 나무의 작은 부분을 탐구하기도 하며,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녹음하며 나무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때론 자신처럼 식물 애호가인 어느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하며, 나무에서 숲으로, 숲에서 땅으로 확장되며 종교적인 탐색으로까지 이어지는 작가만의 사유 과정도 발견할 수 있다.

 

[현재를 즐겨라, 순간을 움켜쥐어라, 지금을 살아라. 나무의 시간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햇볓이 내리쬐면 꿀꺽 삼키고 먹는다. 밤이 오면 쉰다.] (16p)


수마나 로이가 말한 나무의 시간이란 바로 "현재"였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인간과는 달리 나무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성장하는 삶. 그 결과물은 꽃이거나 열매일 수도, 아니면 아무 결과물도 없을 수 있지만 나무의 삶에 정답과 오답은 없다. 개인적으로 요새 '현존'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의 삶과 시간이 현존 그 자체라 괜히 반갑기도 하면서 나무의 자세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독창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시인의 언어와 자연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깊이 있는 사유와 탐구까지 느낄 수 있는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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