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그 찰나의 반짝임 [영화]

글 입력 2024.02.1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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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여기 혼자 남아 널 기다려.

 

한번이라도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짝사랑이야 말로 혼자만 기억하는 추억을 매일같이 끌어 모으니 말이다. 영화 <노트북> 속 남주인공 노아도 결국 짝사랑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같은 공기를 마시고, 서로 뜨겁게 사랑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노아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같은 시간에 머물고 있지만 결코 함께한다고 할 수 없다. 노아에게 앨리는, 너무나 소중해서 곁을 떠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엘리에게 노아는, 그저 낯선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저마다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눈빛, 표정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나의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여전히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어디에도 없는 '무'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는 실체 없는 무언가를 붙잡고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억울한 기분 마저 든다. 아직까지도 울렁이는 이 감정의 근원이 결국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놓지 못하고 살아 간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제아무리 완벽할지라도 그저 색채 없는 정교한 스케치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우린 지나간 누군가를 그리며 각자의 삶에 색깔을 칠한다. 그렇게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캔버스에 어여쁜 색을 가득 채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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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노아가 앨리를 계속해서 사랑한 이유가 아닐까? 노아에게 앨리는 자신의 삶에 색을 칠해준 고마운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는 앨리가 기억을 되찾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매일 그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혼자만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추억이란 보통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다. 함께 좋은 곳을 가고, 좋은 것을 보며. 좋은 하루를 보냈던 지난 날이다. 그리고 비록 그 순간이 지나갔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마주보며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억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없었던 일인 양.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과연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심장을 도려내는 기분과도 같을 것이다. 노아는 그런 고통을 곱씹으며 앨리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니 단 한 순간 만이라도, 그 찰나 만이라도 우리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노트북> 뿐 아니라 다른 어느 영화를 보더라도 남녀 주인공 중 한 명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때 지난 기억을 혼자 가지고 있는 쪽이 훨씬 큰 상실감을 느낀다. 반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없다. 그에게 지난 일들은 곧 일어나지 않은 일과도 같을 테니. 반짝이는 기억을 혼자만 묻어두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 오지 않음을 알면서도 와 주길 바라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서로의 곁에 머물기를 택한다. 먹먹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끝내 그 무모한 행동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가 영화 속에서, 노래 가사 속에서 사랑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 없이는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붉다고 느끼지 못하고, 가슴 탁 트이는 파란 하늘을 푸르다고 느끼지 못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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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둘은 엇갈린 시간 속에 남아 계속해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필자가 떠올린 의문이다. 그러나 그 결말이 무엇이든, 그들이 했던 사랑은 모든 것을 다 내어줄 만큼 순수했음을,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그러니 다시 사랑을 시작하든, 모든 것을 내려놓든. 더는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둘에게도, 그리도 당신들에게도.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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