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예술 앞에서 자린고비가 되어버린다면_『예술적 상상력』

글 입력 2024.02.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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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예술의 쓸모에 대한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내가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서점 가판대에 놓인 이 책을 지나치기란 불가능이었다. 처음엔 ‘상상력’이라는 명사에 ‘예술적’이라는 관형사가 붙는 것이 쓸데없는 첨언같이 느껴졌다. 예술이 아니고서야 상상력이 핵심이 되는 분야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에 비로소 망상과는 구별되는 창조로 이어지는 진짜 상상력이 예술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여기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이라는 부제는 예술이 어렵고 난해한 사람들에게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도를 일러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한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붙는 것처럼 예술을 읽는 힘, 곧 능력이나 역량도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세 번 정도 완독한 지금, 더없이 완벽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 오종우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래서인지 문학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가 자주 소환되곤 한다. 하지만 비단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회화, 음악을 아우르는 식견을 바탕으로 예술 강의를 해왔다. 예술이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이유를 탐구하였으며 이 물음을 남들과 공유하는 탁월함도 있어 성균관대학교 내 티칭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여러 천재들의 작품을 인문학으로 엮은 전작 <예술 수업>의 후속작으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이 책도 마찬가지로 회화, 음악, 문학을 넘나들며 예술이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만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즉,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이 어떻게 창조의 원천이자 문명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책은 1장 ‘상상력은 어디서 올까_피카소의 <두 자매>가 던지는 질문’ , 3장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_소리를 화폭에 담아낸 클레’ 5장 ‘천재는 무엇인가_ 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왜 그토록 질투했을까’를 포함해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철학적 사유를 던지는 특정 예술 작품 또는 예술가가 주축을 이루고 관련된 다른 작품들을 수록하여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회화나 문학 작품의 경우 이미지나 텍스트를 삽입하고 음악은 바로 청취 가능한 사이트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첨부해서 독자들이 책이 설명하는 바를 바로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장르의 구분이 곧 각 장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순간의 인상을 담은 세잔의 풍경화와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예술의 한 갈래일 뿐인 회화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도 인상주의가 나타났다는 것을 일러준다. 저자는 “인상주의를 흔히 시각이 중심인 화풍으로 이해하려고 들지만 사람의 감각이 어디 단절되어 있는가 (···) 감각은 서로 침투한다. 인상주의 그림에서 우리는 바람 소리도 듣고 풀 향기도 맡는다. “라는 설명을 부연하고 드뷔시의 달빛 연주 영상을 첨부하면서 소리에서 시각적 색채감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이렇듯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을 체험하기를 유도하는 방식은 기존의 예술 교양서적과 구별되는, 이 책의 특장점으로 꼽힐만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각 장마다 단편 에세이와 같은 ‘예술 수업’이라는 챕터를 덧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하루 종일 특정 멜로디가 떠나지 않는 경험에서 시작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노동요까지 거슬러 올라가 삶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누구나 겪어 봤음직한 경험을 풀어내 생활과 밀접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예술의 지평까지도 건드리고 있다.

 

이 책은 철학 서적과 교양서적의 중간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술의 중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예술 사조들을 통시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 불문 다양한 작품을 엮는 궤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음에도 한순간 주제로 집약이 된다는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은 창조의 근원이다’라는 분명한 주제의식이 있기에 독자들은 방대한 작품을 눈에 담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아방가르드니 수용미학이니 하는 하는 것들은 머리 아파서 싫고, 예술가들 야화 위주의 가벼운 이야기는 부족한 사람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예술 초심자일수록 저자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의뭉스러운 점을 섬세하게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경제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그다음 자본 제로 세 단계를 거쳐서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그리곤 자본 다음의 경제 원동력은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다소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사실 미학을 공부하다 보면 예술이 철학의 정점이고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책 일 것만 같은 느낌을 나도 자주 느낀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예술은 돈 있는 자들의 과시 수단이거나, 유한계급 모방의 수단일 때가 많다. 또 예술이 전혀 우리 삶에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상당하다. 그래서 예술이 경제를 이끌어갈 동력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아직은 와닿지 않는다.

 

예술이 경제의 원동력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 임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예술 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학생들을 줄 세우는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없으니 교육 현장에서 소외되었던 예술은 그 학생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겉치레로 전락하기 일쑤다. 미술관은 있어 보이는 척하기 위해 가는 거지 솔직히 방구석에서 유튜브 클립 하나, 막장드라마 한편 보는 게 더 좋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치 떡을 받아먹을 사람은 과자고 초콜릿이고 다른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데 떡 줄 사람만 애가 타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큐레이터를 꿈꾸는 나 같은 사람이나 예술 강의를 하는 저자에게는 공통된 임무가 있다. 예술은 망상이 아니라 현실을 가꾸는 꿈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술은 실체 없이 아름다움을 쫓는 일 아닌가?‘라는 의문에 “세상을 바꾸겠다고 이념으로 얼룩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예술이 하는 일이 아니다.” 라는 이 책이 내어놓은 답이 임무를 수행하는 지표가 될 것 같다.

 

실제로 굴비를 맛보진 않고 그저 매달아놓고 보기만 한 자린고비처럼 예술을 먼발치에서 기웃거리고만 있었다면, 이제는 예술이 당신의 삶에 전면적으로 들어오게 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목 아프게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우러러보지 말고 굴비와 밥의 조화로움을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 이 책에 관해서는 ‘읽는다’라는 표현보다는 ‘경험한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고, 음악을 귀로 느끼고, 소설을 마음으로 이해한 후 텍스트로 된 설명을 곁들여 이 책을 오감으로 경험하길 바란다.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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