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을을 떠나고 싶어 했던 살인마 소녀의 이야기 [영화]

영화 <펄(pearl)>의 공포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글 입력 2024.02.1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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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포스터.jpg

 

 

 티 웨스트 감독, 미아 고스 주연의 영화 <펄>은 공포, 슬래셔, 심지어는 고어로 분류되는데, X의 할머니로 나왔던 캐릭터인 펄의 과거를 다루는 프리퀄이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절, 한적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텍사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주인공 펄의 도끼 살인이 그 소재다. 영화 초반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전개 속에서 위태로운 긴장감이 곳곳에 스며들며, 초반부 장면부터 반복되는 펄이 행하는 동물 살해는 그 긴장감을 구체화시키는 하나의 장치이다. 마을을 떠나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펄의 욕망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엄격한 어머니와, 전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 하워드를 둔 펄은 자신의 돌봄을 요구하는 마비가 온 아버지에 대한 존속 살해의 욕망을 관객에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앞으로 휘몰아칠 살인의 서막을 알린다.

 

 

 

세계대전이라는 배경 속 할리우드와 성애화된 공포



펄은 갑갑했던 마을을 떠나 댄서나 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장대에 걸려있던 허수아비를 내려 춤을 추고 허수아비의 모자를 쓰고 오는 등 오즈의 마법사를 적극적으로 ‘오마주’한다.  할리우드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흑백 영화에서 컬러 영화로의 전환을 알리는 영화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처럼, <펄>에서는 이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영화(영상 매체)의 역사라는 또 다른 맥락을 개입시킨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등장하는 허수아비를 일종의 수단으로 성적 관계를 흉내내는 펄의 모습은 다소 찜찜하고 기묘한 인상을 준다. 허수아비가 ‘오즈의 마법사’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이후에, 그리고 X에서 나올 포르노 매체가 영화 산업과 같이 발전했음을 알리는 것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조던 필의 영화 <놉>이 사람을 삼키는 거대한 우주 물체와 흑인과 유색인종을 소외시키거나 대상화함으로써 배제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가질 수 있는 폭력적 면모라는 요소들을 ‘시각’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해 구성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떻게 본다면 <펄>과 <놉> 모두 일종의 ‘메타 영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따지면 <펄>이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사용하는 방식은 비록 영화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오마주라기보다 패러디나 패스티시에 가까워진다.


성애화된 공포는 영화가 더 전개되면서 점층적으로 누적된다. 영화 속에서 잠시 도시로 나간 펄은 영사 기사와 가까워지는데, 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온 펄은 도색 필름을 보여주는 그에게 댄스 오디션에 대한 응원과 격려를 듣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펄이 집을 나간 행동은 어머니에 의해 비난받고 억압된다. 펄이 그 영사기사와 성적 관계를 가진 것은 ‘사고’로 인해 어머니가 사망한 시점 그 즈음이다. 흥미로운 점은 성에 대한 욕망이 주인공이 가지게 되는 해방에 대한 욕망으로 의미화된다는 것인데,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장르문법의 전형성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은 단죄 혹은 징벌의 대상이거나 비체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받던 것을 뒤집어 성적 욕망을 추구하는 여성 빌런을 메인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는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을 위계적인 방식으로 분류하는 서구 근대의 질서에 대해 ‘타자로서의 여성’이 내밀 수 있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의 도전장이다.

 

 

 

펄이 벌이는 살인극을 이루고 있는 화소들



펄의 가족은 마비로 인해 돌봄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가장’의 역할을 하는 어머니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이 배경인 것을 생각하면 흔하지 않지는 않은 일이며, 신자유주의화에 따른 ‘남성성의 위기’를 겪은 동시대의 미국 사회에서는 꽤나 의미심장한 기표로 읽힐 수도 있다. 펄의 수상한 행동들(동물학대,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버리려고 시도하기, 외박 같은⋯)을 눈치챈 후 펄의 행동을 규제하고 경고하는 펄의 어머니는 결국 펄과 논쟁하다가 불이 옮겨붙는 사고가 나고 펄에게 제대로 처치되지 못하자 죽게 된다. <펄>에서 나타나는 주요 포인트 중 하나가 어떻게 펄이 ‘강하고 억압적인’ 모성을 극복하고 엄마를 거스를지에 대한 것인데, 그러한 의미에서 펄은 ‘여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설명할 수 없는)의 극복을 수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고, 바로 그 때문에 펄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적국인 독일 출신 이민자로 추정되는 펄의 가족은 전쟁 상황이라는 배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조심’해야 했고 바로 그 지점이 어머니가 펄의 행동을 과할 정도로 단속하는 이유다. 영화 소에서 마지막 살인까지 끝마치고 난 뒤 후반부의 펄은 아마 펄이 그리워했을 어머니의 사랑과 다정함에 대해 상상하는데, 그 속에서 어머니는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펄이 자신의 근원으로 상상하는 것, 혹은 ‘모녀’ 간 유대의 기반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이 아니라 적국인 독일의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펄이 지속적으로 느끼는 고립감과 소외감에 일조했으며,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억압이 아닐지라도 펄의 정신분석학적으로 뒤틀려버린 내면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펄의 다음 살인은 펄이 잠시 사랑에 빠졌던 시내의 영사기사다. 펄의 집에 간 그는 수상함을 느껴 빠져나가려 하고,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펄은 그를 도끼로 죽이고 시체를 차에 넣어 강에 빠트린다. 뭔가 이상함을 발견한 그와 그런 그에게 집착하는 펄 사이에서의 긴장은 펄의 지난 행각을 알고 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펄의 살인은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알려준, 환상을 준 그가 결국 펄의 구원이 아니었다는 암시다. 펄의 성적 욕망은 특정한 대상에게 소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일탈적이며 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적 주체화를 이룬다. 욕망이 살인으로 전이되며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슬래셔가 된다. 남자를 죽인 후, 펄은 자신의 범행을 지켜본 식물인간 상태의 아버지에게 수건을 덮어 결국 죽게 만들며 마치 과업을 행하듯 살인하고, 그 살인의 증거를 정리한다. 그 이후 펄은 그토록 원했던 오디션을 보러 교회에 간다.


펄이 댄서가 되기 위한 오디션 장면에서는 펄의 오디션이 마치 극처럼 연출된다. 전쟁터를 배경으로, 그리고 여성 군인들을 백댄서로 센터에 선 펄은 춤춘다. 하지만 펄의 눈 앞에서 탈락을 이야기하는 심사위원들은 펄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죽이거나 죽도록 방조한 엄마, 아빠, 그리고 영사기사와 펄의 마음 속에서 일종의 규범이자 제약으로 자리잡은 떠난 남편 하워드이다. 펄이 극단의 오디션에서 탈락한 이유는 그의 외모가 미국적이고 ‘전형적인 금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것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가 인종청소를 감행하며 ‘순수한’ 아리아인 여성의 신체를 금발로 의미화한 것을 고려한다면 아이러니한 인종적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금발’은 백치미의 상징으로 그 당시 영미 사회, 특히 미디어에서 매력적인 백인 여성의 조건이었다. 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금발’은 시누이이자 마음을 털어놓았던 친구인 밋시가 가지고 있고, 펄은 결국 자신과 달리 오디션에 붙은 밋시를 살해한다. 이 장면은 토막 살인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으로 통하고, ‘슬래셔 영화’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장면이다. 밋시는 영화 내내 펄과 달리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예상되는 결과다.

 

영화는 전쟁에서 돌아온 하워드(펄의 남편)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체, 그리고 이미 썩어버린 음식, 괴기스러울 정도로 환히 웃고 있는 펄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끝난다. 펄이 마치 평범한 가족처럼 배치한 하워드를 기다리는 부모님의 시체들과 다 썩어버린 저녁 만찬은 가부장제와 함께 작동하는 정상 가족의 기능과 ‘겉모습’을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허상의 단란한 가정의 저녁식사가 아니라 시체들과 썩은 고기뿐이고, 펄은 이미 ‘저질러버렸’기 때문에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살육전을 마친 뒤 펄의 행동은 규범적인 아내와 딸의 역할을 과잉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 허상을 폭로해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교란의 성질을 지닌다. 이 끔찍한 광경은 마치 당시 미국 사회가 몰두했던 전쟁과, 전통적인 가부장제 역시 결과적으로 언제든지 교란될 수 있는 불안한 가치임을 함의한다. 고전적인 공포 영화는 현재 제도에 위기를 가져오는 타자를 ‘빌런’ 혹은 괴물로 상상하면서 공포를 자아냈다면 <펄>은 체제에 이질감을 느끼는 펄을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빌런으로 삼아 장르의 새로운 전형을 쓰고 있다.

 

 

 

그래서 펄은…



영화 <펄>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사람들을 죽이고 억눌린 자아를 폭력성으로 표출했던 펄은 절대 무결하지 않은 존재다. 펄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주인공 같은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자도 아니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후회는 할 수도 있겠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다. 펄은 자유와 해방을 바랐던 인물이지만 결국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거슬리는 모든 것에 어머니의 도끼를 휘두른다. 펄이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행한 모든 일들은 결국 펄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이 영화가 끝난 이후의 펄은 어떠한 삶을 살아갔을까? 많은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귀향한 하워드가 펄을 ‘버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노년의 부부가 된 그들이 등장하는 X의 정보를 참고하면 하워드가 펄과 계속 같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X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환상이 좌절되고 그토록 원하던 집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펄은 포르노 영화를 찍으러 온 젊은이들을 학살한다. 무거우면서 씁쓸한 결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미국의 미래도 펄의 미래처럼 씁쓸하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간기에 잠시 이전과는 다른 호황을 맞고 사람들은 이러한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하지만 전세계적 금융위기의 시작이 되는 경제대공황을 겪고,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한다. <펄>에는 이러한 불길한 무의식을 반영하듯 곳곳에 긴장과 불안이 산재해 있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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