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문프로젝트 '오방신과' 공연 "Spangle"

근래 내가 본 가장 힙한 공연
글 입력 2024.02.1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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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디어 고대하던 '이희문과 오방신과' 공연을 봤다.


이희문은 흔치 않은 남성 경기민요 소리꾼이다. 이희문은 경기민요 명창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음악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뒤늦게 경기민요를 시작했고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수많은 대회에 수상하면서 경력을 쌓아 갔다. 그런데 이희문은 평생 경기 민요 전통을 지켜 왔던 어머니와는 다른 길을 개척했다.


어찌 보면 이는 이 시대에 전통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이 대부분 갈 수밖에 없는 길일 것이다. '어떻게 전통 예술에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그것이 바로 고영열의 고민이고 박다울의 고민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희문의 시도들은 단연 파격적이고 다면적이다. 음악적인 측면과 공연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상상력이 가 닿은 모든 것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먼저 음악적인 측면에서 이희문은 동시대에 활동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과 적극적인 공동 작업을 통해 민요라는 원재료를 한국 전통 음악에 가두지 않고 보편적인 감동과 공감을 살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국 남자'라는 공연을 했고, '장영규, 이태원, 이철희' 등의 연주자와 함께 '씽씽'이라는 밴드로 활동하면서 미국 'Tiny Desk' 쇼에서 공연하기도 했으며, 얼마 전에는 밴드 '까데오'와 함께 '강남 오아시스' 공연을 했고, 최근에는 밴드 '허송세월'과 프로젝트 공연 '오방신과'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 형식적으로는 이희문 본인이 밝히길 조선시대 '박수무당'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반짝이는 짧은 치마와 긴 머리 가발, 진한 화장, 하이힐을 신고 공연을 해서 흡사 드랙 공연을 연상시키는) 성별에 자유로운 착장과 퍼포먼스로 이희문의 시그니처 공연 스타일을 구축했다.


드디어 공연 이름(spangle)처럼 반짝반짝하는 이희문이 무대에 등장한다. 반짝이는 옷을 입고 힐을 신고 느릿느릿 등장하는 이희문에게 익을 대로 익은 인간에게서 풍기는 농염함이 느껴진다. 공연 내내 민요 바탕에 여러 장르를 얹은 노래를 부른다. 대부분 경기 민요 발성은 카랑카랑한데 이희문에게서는 느릿느릿 둥글둥글 질벅질벅 물 위에서 유영하는 듯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민요, 재즈, 록, 댄스, 강력한 밴드 사운드, 드랙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이 모든 이질적인 것들의 공통점이라고는 오직 '이희문'이라는 사람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이희문'이라는 유일무이한 장르를 만든다. 이희문의 작업은 나에게 완벽한 취향저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러나 이토록 다른 것들을 모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철저한 계산과 훈련이라고 할 만한 연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와 밴드의 합을 통해서 어렴풋이 느껴진다.


'단테의 신곡'을 판소리로 바꿔 부른, 그 어둠 깊숙이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소리꾼 '정은혜'가 천연덕스럽게 이희문과 함께 싸이의 '나팔바지'를 부른다. 지금은 트롯 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씽씽'과 '놈놈'의 멤버 '신승태'도 '나팔바지'의 흥을 돋우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런 반전과 해학이 관객을 흥분시킨다.


연령대가 다양한 관객들에게서 "좋다" "얼쑤" "잘한다" 추임새와 "섹시해요" "와~~~~~" "사랑해요" 함성이 뒤섞여 나온다. 민요 베이스의 노래와 연주에 관객들은 다양한 추임새와 스탠딩과 헤드뱅잉으로 화답한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의 농염한 애티튜드에 120% 만족한 공연이었다.

 

그리고... 근래 내가 본 가장 힙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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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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