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추억하며
글 입력 2024.02.1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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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항상 TV보다 책을 가까이하라 말씀하셨다. TV를 많이 보면 바보가 되고,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한 어린이가 된다고. 하지만 어떤 아이가 TV를 틀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예능과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마다할까? 나 역시 자랑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TV와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온 가족이 거실에 함께 모여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던 순간이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면서도, 순간순간의 상황을 가볍고 코믹하게 그려내 웃음을 자아낸다. 시트콤에 나오던 신애, 해리와 동갑이었던 8살의 나는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면 속 가족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웃고, 울었다.


시대가 변했다. 과거와 같은 가족은 해체됐으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OTT, 유튜브 등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발전하며 미디어 시청은 ‘개인화’됐다. 가족들이 거실 한 자리에 모여 TV를 보는 일, 드라마 방영 시간에 맞추어 ‘본방사수’를 하는 일은 머나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옛날 드라마, 예능은 다시 인기를 되찾고 있었다. 나의 어린 날 소중한 추억인 <지붕 뚫고 하이킥>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편집되어 ‘오분순삭’ 등의 유튜브 채널 업로드되었고,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극 중 ‘준혁 학생’처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유튜브에 쏟아지는 수많은 <지붕 뚫고 하이킥>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봤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짤막한 영상은 매일 공부에 치여 시간도, 여유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제격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에피소드였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고, 개성 있는 캐릭터와 재치 있는 연출로 구현되는 온갖 ‘웃긴’ 상황은 웃음을 자아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지붕 뚫고 하이킥> 126화를 제대로 ‘정주행’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시트콤을 다시 보니 마냥 웃기지 않았다. 가슴이 쓰린 부분도 있었고,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뿌듯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순간도 있었으며, 무언가를 깨닫기도 했다. 방영 당시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비극적 결말을 향해 질주하면서, 나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됐다. 

 

 


웃음 뒤에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시트콤은 재밌다. <지붕 뚫고 하이킥>도 너무 웃겨서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는 몇몇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뒤에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놓여있다.

 

극 중 신애와 세경은 강원도 태백에서 서울로 오게 된다. 신애와 세경의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쫓긴 탓이다. 거의 무일푼으로 서울에 오게 된 이 ‘산골소녀’들에게 서울은 냉혹하기만 하다. 신애와 세경에게 ‘서울에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코 베어 간다’고 따뜻하게 조언을 건네고 남은 탕수육을 가져다주던 짜장면집 주인은, 신애와 세경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돈 없이 찾아와 손님들이 남긴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묻자, 화를 내며 남의 장사 망치지 말라며 내쫓는다. 신애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순간조차 어린아이에 대한 걱정은커녕, ‘쇼하지 말라’며 신애를 다그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신애를 책임지려는 세경은 각종 알바에 도전해 보지만 ‘이미 사람을 뽑아서’, ‘숙식 제공은 어려워서’, ‘여자라서’, ‘중졸이라서’ 거절당한다. 세경을 좋게 봐주던 주유소 사장조차 세경의 연이은 실수에 불같이 화를 내며 세경을 잘라버린다. 그렇게 드넓은 서울에서 돌아갈 곳 없는 신애와 세경은 노숙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줄리엔강을 만나 도움을 받고, 식품회사 사장인 이순재의 호의로 세경이 입주가정 도우미로 일할 수 있게 되며 당장의 숙식을 해결할 수는 있게 되지만 어린 신애에겐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일도 쉽지 않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인 해리 때문이다. 신애는 모든 것이 해리인 집에서 모든 것을 빌려 쓰고, 눈치 봐야만 한다. 세경이 집안일에 치여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동안, 어린 신애는 점점 주눅 들어만 간다. 그리고 집안의 어른들은 어린 신애의 여린 마음에 무관심하다. 보살핌이 필요한 신애와 세경이지만, 서울에서 이들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줄리엔강, 이순재와 같이 누군가의 우연한 호의만이 이들을 굶주림과 노숙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줬을 뿐이다.

 

김자옥의 집에 하숙하는 황정음은 서울대가 아닌 ‘서운대’ 영문학과를 다니고 있다. 서운대라는 학벌 때문에 과외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서울대’라고 알고 있는 이현경(극 중 이순재의 딸) 덕분에 과외를 구하게 된다. 집안 식구들에게 서울대 학생인 척하면서 말이다. 과외하던 중 지갑을 놓고 온 정음은 식구들에게 자신이 서울대가 아닌 서운대임을 들킬까 걱정하며 서둘러 이순재의 집으로 향한다. 거실 한복판에 자신의 학생증이 놓여있고, 이지훈(극 중 이순재의 아들)이 그것을 보기 직전, 2층 계단에 있던 정음은 자신의 학생증을 가리기 위해 그만 계단에서 뛰어내린다.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가볍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정음은 날아가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정음은 말한다. “우리는 서울대, 서운대 그런 구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을까? 난 그런 학벌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나레이션과, 자유롭게 날아가는 듯한 모션, 경쾌하고 가벼운 음악까지. 그러나 현실의 정음은 학벌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그 누구보다도 학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정음이 서운대 출신인 걸 들킨 정음의 상상 속에서 모든 집안 어른들은 정음을 비웃고, 비난한다. 극 후반부에서 정음이 자신이 서운대 학생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도 과외를 받는 준혁(극 중 이현경의 아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음은 잘리고, 현경은 더 좋은 학벌의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별 짓지 않는다. 서운대 출신인 걸 들킬까 염려하며 세경 앞에서 고민을 토로하는 정음에게 어린 신애는 ‘서운대 다니는 사람들은 나쁘고, 서울대 다니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냐’고 순수하게 물어본다. 정음의 지갑 속 카드들을 가지고 ‘마트 놀이’를 하는 해리는 정음의 서운대 학생증을 신용카드처럼 이용하며 가지고 논다. 해리에게 정음의 서운대 학생증은 소꿉놀이용 장난감일 뿐이다. 


타인의 어려움과 아픔에 관심갖지 않는 사람들, 사정이 딱하고 난처한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는 사회, 그리고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별 짓는 문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일상을 소재로, 순간순간의 재치 있고 코믹한 상황을 포착하며 우리에게 웃음을 전하지만, 그 웃음 뒤편에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있었다. 그러나 시트콤은 그러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비판하며 시청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현실을 약간의 코믹함을 녹여낸 다양한 장면과 에피소드들로 드러내 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면 즐겁게 웃다가도,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세경과 남의 집에 얹혀살며 잔뜩 주눅 든 신애가, 떳떳하지 못한 채 늘 안절부절못한 정음이 눈에 밟혀 이내 씁쓸해진다. 

 

 

 

현실은 우리를 또 무겁게 끌어내리고



<지붕 뚫고 하이킥>은 가족 시트콤이다. 크게 이순재, 김자옥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세경과 신애는 이순재 가족의 ‘객식구’지만, 이들과 함께하며 점점 ‘가족’으로 융화되어 간다. 이 산골소녀들이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땅 서울에서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설레고 들뜨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지만, 시트콤은 이내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의 벽’을 보여주며 보는 이들의 들뜬 감정을 무겁게 끌어내린다.


극 중 세경은 지훈을 짝사랑한다. 지훈은 세경과 신애를 이순재의 집으로 이끌게 한 은인이자, 가족들이 보지 못하는 세경과 신애의 어려움과 아픔을 걱정해 주고, 위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나 지훈은 서울대 의대 출신의 대학병원 외과의사로,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세경과는 전혀 다른 계급적 지위를 지닌 채,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지훈은 사랑니가 난 세경을 병원에 데려가고, 치료를 받게끔 해준다. 세경이 지훈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순간이다. 그러나 치료를 받기 전 세경이 잠깐 들린 카페에서 과거 지훈의 병원 동기라 자신을 소개한 여성이 세경에게 “(본인) 소개 안 해 주실 거예요?”라고 질책하듯 말하는 순간, 세경은 자신의 처지를 직면한다. 세경은 입을 열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맞은편에 앉은 여성과 달리, 자신은 그럴듯한 직장도, 직업도, 학벌도 없는, 지훈의 집에서 동생과 함께 얹혀살며 일하는 가정부이기 때문에.


세경의 검정고시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포기했던 세경은 준혁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준혁은 세경의 검정고시를 있는 힘껏 돕는다. 바쁜 집안일 중에서도 세경은 짬짬이 시간을 내어 준혁의 방에서 함께 공부를 한다. 하지만 세경은 신애가 더는 주눅들지 않도록 아버지와 함께 먼 해외로의 이민을 결정하고, 검정고시를 포기한다. 그리고 떠나기 전 준혁과 함께 대학 캠퍼스를 찾아 자신을 좋아하는 준혁에게 ‘나 같은 사람 말고 멋진 여학생과 CC가 되어 손잡고 캠퍼스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경에게 검정고시 준비는 꿈을 꾸게 해주고, 고된 가정부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지만, 막상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공부를 하며 준혁과 같은 남학생과 평범하게 연애를 하는 일은 그의 현실에 가로막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따뜻하고 훈훈한 에피소드들을 보면 세경이와 신애가 이순재의 집에 융화되어 온전히 ‘가족’이 되고, 세경이 준혁 혹은 지훈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동화처럼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는 그런 ‘동화’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 힘든 환경 속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모든 것을 견뎌내야 했던 세경에게 ‘희망’은 동화처럼 쉽게 주어지지도, 감히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동화 같은 환상을 기대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경의 현실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환상 동화’에서 우리의 암울한 현실로 끌어내린다. 마치 ‘뭘 기대해, 이게 현실인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웃음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있기에



웃자고 보는 시트콤에 비관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트콤은 재밌는 장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담긴 암울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이 시트콤이 좋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재밌어서이고, 그 재치와 유머가 사람들의 삶에 놓여 있어서다. 사람들이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사건들, 겪게 되는 희로애락 속 무심히 지나갔을 법한 것들을 포착해 웃음으로 풀어낸다. 뭐든지 ‘내 것’이라고 우겨대며 또래 친구의 음식을 뺏어 먹는 동생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모든 음식에 홍어를 숨겨 넣는 오빠와 그런 오빠 때문에 버릇을 고치진 못했지만 홍어를 좋아하게 된 동생, 공부하며 중요한 것을 표시하기 위해 ‘용꼬리’를 그려두고 ‘용~꼬리 용용!’을 외치는 학생,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뀌어대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방귀로 고통받는 가족 식구들, 노년의 나이에 한 여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두 할아버지와, 과외 학생에게 ‘누나’ 소리가 듣고 싶어 거짓말을 하다 결국 남장을 하게 되는 과외 선생님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의 일상 속 벌어지는 누구나 공감할 법한 사소한 사건들 속 녹아든 약간의 과장과 유머에, 우리는 웃고 또 웃게 된다. 


혹자는 특정한 주제나 사건이 없고, 호흡이 짧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시트콤이 ‘실없다’라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특정하게만 해석돼야 할 필요도 없는, 그저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일화들과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지는 이 시트콤이 결국 우리의 삶 같아서 애정이 간다. 우리의 인생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담긴 실없는 이야기들로, 어떤 방향도 없이 그저 흘러가기 때문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이 보여줬던 것처럼 우리의 현실은 동화 같지 않다. 누군가에겐 너무 잔인하고 암울하며,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버겁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아질수록, 웃음이 귀해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처럼 저녁 시간마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재미있는 시트콤 한 편에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은, 이제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웃음의 힘을 믿는다. 슬픔은 힘이 없어서 사람을 금방 주저앉힌다. 분노는 금방 휘발돼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웃음은 강력하고, 오래간다. 재미와 웃음이 건네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고, 또 따뜻하다. 그래서 늘 웃고 싶고, 웃기고 싶다. 일상이 비록 슬프고 절망적이더라도, 순간순간의 유머를 포착하고 간직하며 그걸 커다란 웃음으로 바꾸어내며 당장의 괴로움을 조금씩 털어 내버리는 시트콤처럼 말이다. 그게 내가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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