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나아가는 법: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은하의 끝에서 온 모든 낯선 여행자들을 위하여
글 입력 2024.02.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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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은하 여행을 꿈꿔 본 적 있는가?

 

여기, 은하를 가로질러 달리는 ‘은하철도’를 타고 떠나는 환상적인 여정의 이야기가 있다.

 

 

은하철도의밤앵콜 메인포스터.jpeg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 사는 ‘조반니’가 우연히 어릴 적 친구 ‘캄파넬라’를 만나 은하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소심한 조반니는 은하 축제에서의 사고를 계기로 은하 열차에 탑승해 ‘은하의 끝에서 온 낯선 여행자’로서 은하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 캄파넬라는 은하열차의 승무원 ‘캄파넬로’, 우주의 고고학자 ‘캄파넬리’, 유머러스한 새잡이 ‘캄파넬루‘, 그리고 미스터리한 ‘캄파넬리우스’까지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여 조반니의 은하 여행을 함께한다. 백조자리와 거문고자리, 전갈자리를 지나 남십자성에 다다르는 여정에서 조반니는 묻어두었던 아빠에 대한 기억과 상처를 마주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꼭 행복해질 것을 다짐한다.

 

 

 

신화의 밤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신화'이다. ‘신화의 밤’으로도 일컬어지는 켄타우로스 축제에 가며 조반니의 은하 여행이 시작 되었고, 북십자성에서 남십자성에 이르는 길목의 별자리마다 놓인 ‘정차역'에서 그는 어릴 적 아빠와 함께 책에서 읽었던 별자리 신화와 우주의 비밀을 직접 체험한다.


사실 이 모든 별자리 신화들은 이 여행 자체를, 나아가 조반니의 삶을 은유한다. 백조자리 신화 속 시그너스와 페이튼 이야기는 은하수 축제에서 물에 빠진 조반니를 구해줬던 캄파넬라와의 관계를 암시하고, 거문고자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차용한 넘버는 겁먹은 조반니에게 환상 속 은하 여행을 의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환상적이고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여정의 가운데에서 조반니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기도, 상처 앞에서 두려워 도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용기를 내 묻어두었던 자신의 아픈 상처와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아빠에 대한 기억을 ‘상실의 섬’이 아닌 ‘기억의 섬’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환상 속 은하 여행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지만, 조반니에게는 여행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신화'가 남아 있었다. 사냥꾼이었던 아빠의 이야기, 그리고 아빠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는 그의 이야기가 바로 조반니만의 ‘신화’이다. 가슴 아픈 상실과 이별의 기억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오직 스스로 해 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절대 미룰 수 없는 바로 그 일을 직접 끝마쳐야 만날 수 있는 각자의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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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의 끝에서 온 모든 낯선 여행자를 위하여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마음껏 웃고 울다 보면, 어느덧 이 여행의 끝에서 나도 모르게 가장 크게 위로 받은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무대 위 허구의 인물일 뿐이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돌고돌아 우리에게 닿는 듯하다.


상처를, 아픔을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워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외면하고 잊으려 하는 것이 성장의 근본적 가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를 곱씹고 충분히 받아들이는 과정과 함께일 때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조반니이기도, 피에르이기도 하다. 은하의 끝에서 온 낯선 여행자니까! 상처가 버겁고 아프더라도 우리는 결국 이겨낼 것이고,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기억의 섬에 남게 될 것이다. 언젠가 나와 당신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조반니들이 모든 것을 지나 자신만의 신화를 갖게 되기를. 그리고 부디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

 

 

[이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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