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

그래서 미련으로 남고 싶었다
글 입력 2024.02.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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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었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방 밖에서 나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날 아침 일찍 나가봐야 하는데 늦잠을 잔 엄마가 내 몫의 아침을 준비하다가 삶은 계란을 자를 시간이 없다고 하자 아빠는 그냥 통째로 먹으라고 하라며 엄마를 재촉했다. 매일 아침 엄마는 사 등분한 삶은 계란과 한입 크기로 자른 과일을 잘라 방에다 가져다준다. 나는 잠에서 깨서 씻고 나와 출근 준비를 하며 준비된 아침을 먹는다. 그날의 삶은 계란은 반만 잘려있었을 뿐,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퇴근해서 돌아와 엄마와 아침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아침 먹고 안 먹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하면서 이야기했고 나는 그래서 어쩐지 아빠보다 엄마가 좋더라는 농담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회사에서 배가 고프면 마실 용도로 두유나 오트 우유를 집에 구비해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이거 손 닿는 곳에 몇 개씩 꺼내두었다.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나갈 때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아침을 채우는 이 순간을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수족냉증이 심해지는 겨울이 되면 둘이 가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도 엄마는 갑자기 왜 이렇게 발이 차냐며 엄마한테 대고 녹이라고 따뜻한 발을 내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랑 나랑 둘 다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이렇게 오순도순 별것 아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예전 일이 되었고, 엄마의 몸이 안 좋아지면서 이제는 차가운 엄마 발에 따뜻하게 데운 내 다리를 가져다 댄다. 사소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고 잘 보지 않으면 모를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서 그새 그 순간을 잃고 말았다. 그러면서 지금도 엄마가 주는 사랑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누리고 있다.


엄마 혼자 병원에 갔다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전화로 알리고, 나는 정신없이 여러 병원에 예약 전화를 돌렸던 어느 주말 아침. 놀라고 서러운 마음에 펑펑 울고 나니 엄마가 돌아왔다. 얼굴에 눈물 자국 남아있는 모습을 보더니 엄마는 본인은 괜찮은데 내가 걱정이라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엄마는 그리 괜찮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의 삶에 미련으로 남고 싶었다.

 

아직도 그때 무슨 정신으로 어떤 마음으로 수술하러 가는 날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가방에 넣어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편지를 읽은 엄마가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낸 순간은 선명하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엄마에게 떼어낼 수 없고 돌아보게 되는 미련이 되고 싶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딸이었으면 한다. 이런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도 알고 건강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그런 걸 신경 쓰다가 무언가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놓을 수 없다.


나는 돌려줄 수 없는 작고 커다란, 사소하거나 거창한 사랑을 골고루 받으면서 이 순간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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