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람]

총알에 맞서는 하트
글 입력 2024.02.17 17: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학원 선생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이 직업을 원해서 택한 것이 아니오 살다 보니 하고 있다. 전에는 헤아리지 못했던 숱한 상황들을 마주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매일매일이 전쟁터. 이 터널은 언제 끝이 날까, 이 끝에는 빛이 있을까. 희망도 절망도 품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학생들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긴,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있는데 상대방 마음을 알기를 바랄 수 없겠지. 답안지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적던 학생일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조금만 들지 않으면 가시를 세우는 것을 겪으며 내가 괜히 열심을 다하고 있구나, 괜히 진심을 보이고 있구나, 헛수고라 느껴질 때가 허다하다. 하지만 안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을. 학생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사랑.jpg

 

 

좋아하는 만큼 미워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더라.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 당신에게 특별해지고 싶은데 마음을 몰라주거나 돌려주지 않으면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난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 표현과 표출할 방법을 몰라 반항하기를 택한다. 반항이란 총알이 당신을 아프게 할 줄을 알면서도 방아쇠를 당긴다. 탕!

 

“오늘 시험이야? (썩소를 지으며) 잘 됐다. 걍 우리 다 학원 끊을까? 단체로 나가버리자!”

 

학생의 총알에 대한 답례로 더 강한 무기로 맞설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동료 선생님들처럼 “그래 분위기 해치지 말고 너 나가! 네가 나가든 말든 상관없어. 필요 없어.”라고 독침을 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침은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뿐이다. 남을 독성과 여파를 알기에 선택하지 않는다.

 

“진심이니?”

 

물끄러미 학생을 쳐다본다. 나의 눈을 피한다.

 

선생님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데 새로 온 친구를 챙기는 듯한 모습에 질투를 느꼈겠지. 그 친구는 하필이면 너보다 공부를 잘해.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답답한 마당에 시험까지 치다니. 최근 성과가 좋지 않아 집에서 혼났었는데 이번엔 얼마나 더 혼날까 걱정되겠지. 점수를 집에 공유하는 선생님이 밉고. 넌 속상할 거야.

 

따로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어 속으로 삼킨다. 대신 눈빛으로 보낸다. 알아차렸을까.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시험에서 좋은 점수 나오도록 할게요.”

 

주말에 잠시 문자를 나눴다. 학생의 답신에서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분명하게 나의 뜻을 전달한다.


“난 사실 네가 높은 점수를 내든 낮은 점수를 내든, 널 믿고 좋아하는 건 똑같아. 조건부 사랑 따위 하지 않아. 각종 시험은 어렵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더라. 영어뿐만 아니라 살면서 여러 성취감을 맛보길! Bless you.”

 

학생들은 알까. 채점 시 왜 빨간펜 소나기 대신 색연필 동그라미를 쓰는지, 숙제 노트에 왜 하트를 그리는지, 잘 할 때마다 왜 가산점 대신 하트로 기록해두는지, 왜 하트 개수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적립해두는지 그 이유를 알까.

 

무엇을 맞고 틀림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알고 알아야 할지를 배우는 것이기에, 하트는 줄수록 받을수록 무한하니까, 즉각적으로 보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눈앞에 보상이 없더라도 해내는 연습이라, 그렇게 했을 때 보상이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마지막 날에 칭찬에 비할 수 없는 인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든 것에 속뜻이 있음을 학생들은 알까.

 

나는 학원 선생이다. 누구 말처럼 진도만 나가면 끝인데 주제넘는 짓 하는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마음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방탄복 입기를 거부하고, 방아쇠 당기길 거부하고 싶다. 아프다 못해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학생들을 사랑하기를 택하겠다. 총알보다 독침보다 강한 무기이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때가 되면 학생들도 알 거다. 평생 몰라도 하는 수 없고.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