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우리는 꿋꿋하다 [도서/문학]

위화의 『인생』을 읽고
글 입력 2024.02.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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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행을 마주칠 때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어쩌면 위화의 『인생』은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의 삶을 묘사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은 근현대 중국으로, 당시 중국은 내전과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 빠져있었다. 그러한 세태 속에서 소외된 시민들은 격변기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주인공 ‘푸구이’ 또한 한순간의 실수로 빈곤을 겪게 되며, 아픈 역사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잃어가며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삶에 비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꿋꿋하게 살아간다. 결국 이 소설을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누구보다 슬픈 끝맺음을 맞닥뜨렸지만, 그 속에서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나름의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가는 ‘푸구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의 작가 ‘위화’는 1960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에서 위화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부모님이 의사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웠으며,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에는 폭력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는 현실적이고 몰입도가 높은 소설을 그려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 덕분에 중국 대표 작가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소설 『인생』 속에서도 그는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개인을 동정 어린 시각으로 묘사하며 글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영화화된 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아 위화의 글을 세상으로 퍼뜨리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소설에는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좋은 글귀가 여럿 나오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것은 오히려 “사실 유칭이 죽은 건 춘성 탓이 아니에요.”라는, 푸구이의 아내 자전이 했던 짧은 한 마디였다. 아들 유칭이 춘성의 아내를 위해 수혈하다 목숨을 잃은 뒤, 자전은 모든 일을 춘성의 탓으로 돌리며 춘성을 증오한다. 하지만 춘성의 힘든 삶을 이해하고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자신의 잘못된 증오를 자각하게 된다. 증오라는 감정은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렬한 대신, 우리가 진실을 이해하게 될 때는 그 어떤 감정보다 깨지기 쉽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자전의 한 마디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푸구이가 기구한 운명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던 중,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증오를 거두고 삶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그는 증오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음을 이해한 후에는 오히려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지니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이 한 문장을 통해 증오를 떨치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읽으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두 가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소설에서도 제시되었던,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가 지니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로는 삶의 무게가, 그리고 영혼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에도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보듬어주며 묵묵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인생이 지니는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푸구이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직시한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 본래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사고를 당한 사람보다 그 주변인이 더 힘들다고 한다.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깊이 엮여 있는 만큼,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책임감을 지니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주고자 했던 두 번째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고 계신 한 지인분을 떠올렸다. 지긋한 연세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며 그저 하루의 대부분을 병상에 누워 계시는 그분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그리고, 치매로 인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분의 옆에서 간호를 마다하지 않는 그분의 손녀가 함께 떠올랐다. 그분께서 손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던 것처럼, 손녀분 또한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할머니를 정성을 다해 보살피신다. 손녀분은 자식들이 할머니 얼굴을 자주 뵙고 작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이것이 위화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삶 자체가 고통스러워 보이고 비극적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책임을 다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푸구이의 삶이 그렇고, 어느 할머니의 삶이 그랬으며, 손녀분의 삶이 그런 것처럼.

 

 

[고은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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