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총천연색 전시 리뷰 - 키치 - 탈중심화된 사물을 예술에 담다.

글 입력 2014.09.2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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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총천연색

2014. 9. 4 ~ 10. 19


- 키치 -

탈중심화된 사물을 예술에 담다.









국제적 작가, 미술계의 반항아라고 불리는 작가가 있다. 그는 최정화로 '키치'의 영역에 있는 사물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와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다. 최근에 리움 미술관의 '교감'전에도 작품을 전시했으며,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개인전이 '문화역 서울 284'에서 개최되었다고 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가게 되었다. 작가의 전시와 작업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천안 터미널 쪽에 있는 꽃 꼬치가 처음 이었다. 당시 꽃이라는 소재만을 사용하는 작가로 오해하고 있었던 나는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며 그의 작업세계가 그보다 더 넓고 다방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의문점을 전시를 통해 해소하고 싶었다. 첫 째로 그가 생각하는 예술은 자신에게 취미이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또, 삶 그 자체에서 예술을 시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다이즘, 플락서스 작가들이 주창하던 것과 같은 맥락인지 작품으로 느끼고 싶었다. 또한 지극히 '키치'적인 소재의 사용으로 이루어진 작업이 그가 주장하듯이 어떻게 '조형적'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그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들 "생생, 싱싱, 빠글빠글, 짬뽕, 빨리 빨리, 엉터리, 색색, 부실, 와글와글"을 작품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총천연색이라는 제목을 가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주제와 제목 모두였다. 제목인 총천연색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었는데 천연색은 자연으로 가는 것을 뜻하며 그 '천연색'이라는 것을 '총'이라는 속세적인 구분을 지어 인공적인 자연의 색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인공적인 것 마저 자연으로 삼아서 살고 있는 나의 상황에 그 화두는 공감이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것은 아무래도 축구장에 있는 인공잔디였다. 따라서 가장 인공적인것이 가장 자연적인 것이라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들이 가지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내는 의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문화역 서울 284'가 계속해서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우리 근대의 모습을 작가 최정화의 작업에서 어떻게 찾아냈는지 글을 통해서는 예상이 되지 않았다.




<꽃의 매일>, 가변설치


전시는 총천연색이라는 제목 이외에도 '꽃'이라는 이름의 공통성을 가진 작품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서울역에 내려 '문화역 서울 284'로 향했을 때 <꽃의 매일>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조형물이 역사 바깥에 설치되어있었다. 그 조형물은 플라스틱 소쿠리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에서 연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며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소쿠리나 키치적인 사물들로 만든 탑 작업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꽃의 매일>은 붉은색과 초록색 소쿠리의 다른 배치들로 여러가지 형상을 보여주었다. 그 작품의 색은 그야말로 형형색색이었다. 돌, 대리석, 벽돌, 콘크리트, 유리, 철근과 같은 구조물로 이루어진 또 채색이 되어있더라도 너무나 무거운 색으로 되어있는 주변의 환경들 속에서 플라스틱 소쿠리는 그 자신의 색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풍경은 너무나도 이례적이고 낯설었다. 평소에는 그 형형의 색을 발휘하는 소쿠리가 개별적으로 있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들이 모여 하나의 조형미를 가진 작품으로 바뀌었을때는 오히려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의 매일'은 크기 또한 매우 컸기 때문에 그림자가 길게 자리잡았는데 그 속에서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품이라는 것에 저렇게 까지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사물에서 숭고미와 우아함을 느끼게 하고 일상적 풍경을 현대미술에 끌어들이는 작가의 작업세계에 한 발 담근 느낌이 들었다.



<늙은 꽃>, 가변설치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보이는 작업들 중 <늙은 꽃>이라는 작업은 콘크리트 벽돌과 병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는데 단번에 배영환 작업이 연상되었다. 이 작품은 키치적인 것을 도식, 구조화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상으로 만든것 처럼 보였다. <늙은 꽃>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버려지고 이제는 쓸모없어진 소재들(콘크리트 벽돌, 깨진 병조각)을 위로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배영환 작가의 작업과 비슷한 접점이라고 생각된다. <꽃의 여가>라는 설치작품 중 하나는 흔히사용되는 비닐가방이라는 대중적 소재를 이용해 거대한 탑과 같은 구조물을 설치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지는 숭고함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바라보았을 때를 떠오르게 하였다. 뒤를 이어서 전시되어 있는 <꽃의 여가>작품은 작가의 수집품과 여러 사물들로 이루어진 설치였는데 이 수집품, 사물을 이용한 작업은 이번 전시의 다른작업들 그리고 작가의 지금까지의 작업세계를 개괄적으로 이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치된 작품의 소재들은 속세적이고 키치적인 우리 근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었다. 의자, 탁자와 같은 것들과 이전 시대의 사물들이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빛나는 사물과 대비되었다. 이런 배치들로 인해 '근대성'이라는 화두를 어떻게 전시에서 풀어갈 것인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꽃의 속도>, 가변설치


중앙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향했을때 '근대성'의 화두는 더욱 뚜렷해졌다. 바로 <꽃의 속도>라는 작품 때문이었는데 큐빅으로 조형되어있는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 밑에는 처참할정도로 부서진 잔해들이 있었다. 파괴된 물질들 위에 형성된 존재로서의 샹들리에는 자신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큐빅'이라는 값싼 소재로 이루어진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었고, 이는 '근대성'이라는 우리의 역사, 과거를 딛고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들이 바로 전시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인 급격한 성장때문에 어설프고 서투르게 보여지는 한국의 근대성 그러나 짧은 기간에 발전을 이뤄내야했기 때문에 단단하고 치열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꽃 숲>, <꽃 궁> 설치 전경


<꽃 숲>, <꽃 궁>이라는 이름아래에 이어진 작업은 여러가지 다양한 사물들을 배치한 설치작업이었다. 그 작업은 작가가 여러가지로 실험하는 영역 중 인테리어적인 측면이었다. 그 공간안은 옛날의 가구, 신선도, 누군가의 그림, 십자수, 플라스틱으로 만든 형상을 탑으로 쌓은 작품들과 같은 다양한 것들이 모여있었다. 그 길에서 알 수 있는 공통점은 키치적, 대중적인 사물들이 모인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의 소재들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 작품으로 자리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작업을 연금술이라고 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탑 혹은 거대한 기둥같은 형상을 만드는 쌓아낸 작업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한 <꽃천지>라는 작업은 키치 사물이 연결된 공간에서 그 빛을 반사되게 하여 더욱 빛나게 하는 공간이었고, 그 '색'이 잘 느껴졌다. 작가의 작업 중 어떤 사물이나 형상, 그림(인물을 묘사한)에 가면을 씌우는 작업이 있었는데 이는 가면을 씌움으로서 '동양적'이거나 '서양적'인 오브제를 모두 합일되어 '짬뽕'시키는 것이었다. 이후 전시되어 있는 작업들도 모두 작가의 형형색색과 조형적인 아름다움 그의 예술철학이 담긴 작품들이었다.



<꽃의 만다라>, 가변설치


전시에서 개별적인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모든 설치작업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실히 느끼게 한 작품은 입장료로 받아서 제작한 <꽃의 만다라>였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들고온 '플라스틱 뚜껑'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마치 어느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 무덤과 비교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버리는 것과 모으는 것의 차이일까? 아니면 나열된 뚜껑들 앞에 놓인 반사판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주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 '플라스틱 뚜껑'은 예술이 된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 주변에서 머물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또 '플라스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근대화에 있어서 우리에게 '플라스틱'은 '빨리 빨리, 급하게, 서투르게'라는 작가의 철학과도 일치하는 부분을 상징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복제성이 아주 큰 것이었으며 지극히 '인공'적인것이었기 때문에 전시의 주제에 잘 부합하는 소재였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예술이 곧 작가가 주장하는 삶에서의 예술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문화역 서울 284의 바깥에 전시된 <당신도 꽃입니다>라는 작품은 작가가 말하는 '당신의 마음이 나의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상징하며 전시의 전체적인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이 고상하고 우아한 것만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키치적이고 속된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되고, 합쳐지는 것 우리가 '꽃'이 되어 모여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이 문구를 통하여 작가가 제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당신도 꽃, 입니다.> 가변 설치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세속'적인 것이 이렇게나 '꽃'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의 예술철학이 꽃이라는 것으로 풀이되었던 것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전시 서문에서 사용하는 '잡화'라는 단어와 '키치'가 맞물리고, '허접한 꽃들의 웅성거림'이 키치 사물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의 작업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고, 고귀하지 않고 속세에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때문에 탈중심적인 사물들을 모은 작가의 작업은 그것을 발판으로 또 그것과 같이 살아온 우리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다다와 플락서스 작가들 처럼 실험적이고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가의 작업은 '삶'이라는 맥락에서 실천되고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상을 쉽사리 파악할 수 없더라도 그 안의 개별적 소재들이 가지는 특질을 우리가 파악하고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총천연색' 전시는 근대를 지나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와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일상적이고 키치적인 사물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전시였다.


 

by. 하재용


[하재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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