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에도 형태가 있어요. - Time Is A Blind Guide

글 입력 2024.02.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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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A Blind Guide 공연 포스터.jpg

 

 

공연 직전 텅 빈 무대 위로, 누군가 등장하기 전 찰나의 그 짧은 시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노르웨이 출신의 드러머 토마스 스트로넨을 주축으로 피아노-바이올린-첼로-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5인조, Time Is A Blind Guide를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우리가 한마음으로 기다렸던 연주자들이 등장하고, 간단한 소개와 함께 그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날의 이야기는, 오직 그 순간에만 펼쳐졌다. 기본적으로 악보가 있었을 테지만, 많은 부분이 즉흥연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는 동안, 작년 봄에 처음 도전했던 즉흥 연주가 떠올랐다. 음대 석사 과정 학생의 연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나는 다른 연주자들과 한데 모여, 그분이 작곡한 곡을 연주해야만 했다. 어떤 마디에는 모티브가 주어지고, improvisation이라는 활자와 함께 계속해서 연주하라는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즉흥연주라고 하면, 보통,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장점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나에게는 그 자유가 참 어려웠다. 언제까지 연주하고 투티로 넘어가는지, 아무리 즉흥이라지만 어떤 패턴으로 연주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가이드 음원이 있어서, 작곡가가 원하는 흐름이 뭔지 계속해서 고민했고,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TIABG 사진 (2).jpg

 

 

즉흥연주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Time is a Blind Guide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음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즉흥으로 만들어지는 하모니는 넘치거나 모자라는 부분 없이 조화로웠다. 혼자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압도한다던가, 모티브에서 엇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던가, 그런 점이 하나 없이 그들은 정말 그들만의 음악을 즉석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눈빛을 보내며, 음악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선원들 같기도 했다.

 

그들의 즉흥적인 음악과 함께, 무대 위의 스크린에는 음악과 어울리는 사진작가 안웅철의 사진이 곡마다 바뀌어 띄워졌다. 시청각적 즐거움은 두 배가 되었고, 갑자기 내 머릿속의 까만 화면 위로도, 모호한 형태가 야광 빛을 띠며 서서히 나타났다. 어떨 때는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뾰족뾰족한 선들이, 어떨 때는 둥글둥글 구름 모양의 무언가가 떠다녔다. 또다시 피아노가 기염을 토해내자, 나는 생각했다.

 

'아 저 뾰족뾰족한 소리.'

 

맨 뒷줄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해서 그런지, 현악기들에 눈길이 주로 갔는데, 그들은 현악기의 바디를 툭툭 치기도 했고, 활은 브릿지부터 지판까지 자유롭게 선율에 맞춰 유영했다. 사실, 그들이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 연주하냐에 따라 소리가 다른데,  브릿지와 가까워지면 건조하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지판 쪽으로 가까워지면,  몽글몽글하고 흐릿한 윤곽선의 소리가 난다. 그들은 악기를 이해하고, 음악을 이해하며, 그들이 원하는 소리를 찾아냈다.


다운비트라는 음악 전문지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도전적이지만, 접근하기 쉬우며, 최면을 거는 듯한 매우 즉흥적인 음악을 제공한다”

 

- Downbeat

 

 

나는 이 감상평이 그들의 음악을 설명하는 최적의 한 줄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도전은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오다가, 마법처럼 모든 것을 음악으로 바꿔 놓았다. 그들이 무대 중간에 했던 멘트, 눈 맞춤, 심지어 그 모든 것을 지켜본 관객들까지 모두 다 그날의 음악이었다.

 

 

 

원정민 에디터.jpg

 

 

[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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