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떠나기 직전의 마음 [여행]

한 학기의 긴 여행을 준비하며
글 입력 2024.02.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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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의 첫 학기를 뉴질랜드에서 보낼 예정이다.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간다. 한 달 이상을 외국에서 머무르는 것은 난생처음이다. 앞으로 반년간 쓸 글들은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에서 기반한 내용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 낯선 집, 처음 만나는 장소에서 펼쳐질 내 일상이 기대되는 동시에 두렵다. 떠나기 직전이 되니 마음이 참 어지럽다. 물론 마냥 좋거나 마냥 불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얼떨떨하고도 차분한 기분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기록해 두기 위해 오늘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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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1월 초만 해도 지금을 상상하면서 ‘그래도 마음이 조금 헛헛하려나’ 생각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고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생전 처음 홀로 가는 외국이니만큼 준비하고 신경 쓸 것이 정말 많다. 챙겨야 할 짐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학교 등록 절차와 입국 서류까지 전부 준비해야 한다. 1월 내내 교환학생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모든 준비를 영어로 해야 하는 것이 만드는 가족과 나 사이의 장벽이 있다. 분명 준비를 시작하기 전엔 중요한 문서들을 전부 번역해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를 홀로 다짐했는데, 막상 문서가 쏟아지는 시기가 되니 퍽 쉽지 않다. 딸을 홀로 외국에 보내기에 걱정이 태산인 부모님께서 당신들이 영어를 못하시는 것을 너무 아쉬워하시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더 믿음직한 자식이 돼야 했는데! 이번 여정을 계기로 믿을 만한 어른이 되어 보여야겠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는 영 쉽지 않다. 오류가 생긴 문서는 직접 수정을 요청해야 하고, 비자 신청부터 기숙사 신청, 환전과 각종 비용까지 직접 내려다보니 벌써 된통 지친 느낌이다. 뉴질랜드는 왜 이렇게 행정 처리가 느린 건지! 등록의 마지막 절차인 등록 동의서에 터무니없는 금액이 청구된 문제가 생겨 이메일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거의 이 주가 걸렸다. 각각 다른 부서에 세 통이나 메일을 넣고 나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방금 또 다른 문제가 생긴 탓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 *Kia ora만 몇 번을 타이핑하는지 모르겠다.

*Kia ora: 마오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메일의 머리말에 Hello나 Hi there 대신 Kia ora를 사용한다.

 

짐을 챙기는 것도 일이다. 집에는 큰 캐리어가 하나밖에 없으니 큰 캐리어도 하나 더 사야 하고, 짐이 많으니 압축 파우치도 사야 한다. 그 밖에도 수면용 안대, 기내용 목베개, 여권 지갑과 온갖 서류들부터 양치 도구, 세면도구, 화장품 같은 생필품과 뉴질랜드의 여름과 겨울을 나기 위한 옷들까지! 적어둔 목록 중에서 반절 정도 챙긴 것 같은데, 벌써 26인치 캐리어 하나가 꽉 찼다. 돌아올 땐 또 이 짐을 어떻게 다 싸 올지 고민이다.

 

무려 사 개월의 공백이 예정되어 있으니, 만나자고 연락해 오는 친구들도 정말 많다. 이 친구들과 어느 지역, 저 친구들과 서울, 또 다른 친구들과는 어디를 가자고 약속을 잡다 보니 정신이 없다. 만나면 정말 즐겁지만, 그전까지 달력과 씨름하는 건 정말 피곤하다. 중간중간 서류 정리와 짐 챙기기까지 해야 하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바쁜 와중에도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서 큰일이다. 교환학생을 먼저 다녀온 친구도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던데, 원래 떠나기 전은 다들 이런가 보다.

 

 

 

속절없이 들뜨는 마음


 

지금까지는 마음을 정리할 틈이 없던 탓에 그저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곰곰이 들여다본 지금의 나는 아마 새로운 무언가를 앞두고 잔뜩 들뜬 상태인 것 같다. 이 바쁜 와중에도 기대와 불안, 그리움(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이 자꾸만 생긴다. 매일 얼굴을 마주 보는 룸메이트가 없을 일상에 기분이 가라앉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 똑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신이 나기도 한다. 혹시 친구를 못 만들게 될까 불안하다가도, 혼자 가는 여행을 상상하자마자 미소를 감출 수 없게 설렌다. 왔다 갔다 흔들리는 이 마음이 꼭 덜컹대며 이륙 중인 비행기 같다. 글을 쓰는 내내 붕붕 들뜨는 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보내게 될 이번 학기를 하나의 긴 여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더 즐거운 것이 여행이다. 이만큼 정신없이 준비했으니 얼마나 즐거울까? 나에게 다가올 아주 새로운 광경을 기대하며 오늘도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4개월이지만, 부디 이 낯선 세계가 소중한 경험이 되어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아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꺼내어 닦아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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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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