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개팅 스포츠 [사람]

자만추 vs 인만추
글 입력 2024.01.2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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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서 굳은 남자와 그런 남자를 시큰둥 쳐다보는 여자. 글을 쓰는 지금, 옆에서 어색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현재 스코어 0:1. 이 둘의 사이는 어떻게 진전이 될까. 소개팅은 마치 축구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3년 전인가 소개팅을 할 때였다. 일찍 도착해서 메뉴판을 정독했더니 가격마저 외울 판. 상대로 보이는 남자가 드디어 도착했다. 역시나 뚝딱대며 남자를 맞이해본다. 기대한 나와 달리 남자는 어딘가 내키지 않는 눈치이다. 아침에 화장실을 못 갔는지, 이번 달 관리비가 많이 나왔는지, 아니면 피싱 전화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언짢은 기분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가 쀼루퉁한 이유가 궁금하다.

 

“여기 커피향이 참 좋네요. 우선 주문부터 할까요?” 나답지 않게 진행을 하고 앉아있다. 커피와 형식적인 인사말로 적당히 목을 축였을 무렵, 저절로 궁금증이 풀렸다. 남자는 자만추를 선호하는 사람이나 소개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런 만남은 자연스럽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뜻을 나에게 에둘러 확실히 말했다. 띠용, 머릿속에서 두 가지 옵션이 떠올랐다.

 

a) 불편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 즉시 안녕하기

 

b) 불편하더라도 이왕 이렇게 된 것 웃어보기

 

“그럼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되돌아가볼까요? (다시 일어나 앉는 척/우연히 만난 척하며) 여기 자리 있나요?” 이렇게 부끄럽지만 b)를 선택했다. 어떠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서. 노력이 가상했는지 남자는 대화문을 트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노력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았다. 자신을 이혼 전문 변호사로 소개하며 주로 맡고 있는 소송에 대해 얘기했다. 경험해 보지 않는 세계라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부가 헤어지기도 하는구나, 저런 이유 때문에 변호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어렵게 얻은 자유 시간을 소개팅에 쓰기 아까웠겠구나 등. 남자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2시간이 흘렀다. 변호사여서 그런지 언변이 좋구나. 미혼임을 잠시 깜박하고 클라이언트 시점에서 자문을 구하고 싶을 정도. 그런데 어쩌지, 나는 변호사를 구하러 나온 것이 아닌걸. 

 

남자는 배가 고팠는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이게 애프터란 것일지도. 나는 1초간 고민 후 대답했다. “제가 이혼하게 된다면 연락드릴게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소개팅은 인위적인 만남이라며 자만추 범위에 넣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자만추 인만추 여부가 과연 중요할까. 자연스러움을 품은 사람은 어떻게 만나도 자연스러울 텐데. 중요한 건 사람일 텐데.

 

옆 테이블 소개팅 남녀는 여전히 어색하다. 긴장한 남자의 모습이 투명하다 못해 안쓰럽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대~한민국!” 옆자리 남자를 응원한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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