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로 이름 붙이는 삶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1.03 10: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수많은 정보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으로 만난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와 이슬아 작가가 그렇다.

 

송길영은 자신의 직업을 ‘마인드 마이너’라고 정의했다. 마인드 마이너는 데이터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이슬아는 자신의 소설책 속 주인공 ‘슬아’를 ‘가녀장’이라고 칭한다. 가녀장은 원래 ‘부’가 있던 자리에 ‘녀’를 넣은 단어로, 집안의 가장인 딸을 가리킨다. 이들은 누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슬아가 개척한 가녀장의 시대가 궁금했다. 가녀장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했다.

 


IMG_9677.JPG

 

 

태초에 가부장이 있었다 - 슬아는 가부장 할아버지가 거느린 대가족의 첫째 손녀이다. 철저하게 권위적이고 전통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달리 영특하고 총명했던 슬아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슬아는 제사 때 절은 못 할지언정,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함께 우동을 먹으러 갔다. 할아버지처럼 사장님이 되는 것이 슬아의 꿈이었다.

 

이 집은 딸이 사장인가 봐 - 그리고 삼십 대가 된 슬아는 그 꿈을 이룬다. 그 형태는 조금 독특하다. 집의 1층에 자리 잡은 슬아의 낮잠 출판사는 경이로운 아줌마 복희와 아름다운 아저씨 웅이를 직원으로 두고 있다. 그들은 퇴근 후엔 아빠고 엄마이지만 각각 식사와 메일쓰기, 청소와 운전 등의 잡무를 담당하는 어엿한 직원이다. 슬아가 글을 쓰는 동안 이들은 각자 맡은 노동을 한다. 그리고 슬아는 알맞은 임금과 복지를 제공한다. 슬아, 복희, 그리고 웅이는 손발이 잘 맞는 하나의 팀을 이룬다.

 

장군 말고 장녀 - 웅이는 원래 군부대에서 장군을 모시는 차를 운전하는 운전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집안의 장녀 슬아를 모시고 운전한다. 그 밖에도 아침에 차를 내리고, 정원을 가꾸고,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책을 배송하는 등 온갖 일들을 도맡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영 강사, 목공소 일꾼, 노가다 꾼, 트럭 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차곡차곡 쌓아온 삶의 지혜를 노련하게 발휘하곤 한다. 웅이는 낮잠 출판사의 비정규직 직원이다.

 

부엌에 영광은 흐르는가 - 복희는 어려서부터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별거 없는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놓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해 온 복희는 낮잠 출판사에서도 직원 식사를 도맡는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간식을 준비하고, 계절에 따라 된장을 담그고 김장하러 시골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복희는 자기 노동의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받아 정규직원으로서 일한다. 시아버지 댁에서 살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출판사 지붕 위로 구름이 지나간다 - 서로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회사의 하루는 평화롭다. 그리고 서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가족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아름답다. 동료가 된 가족들과 좋은 팀을 이루고자 함께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이다.

 

 

team-spirit-2447163_1280.jpg

 

 

“선생님은 먼저 선(先)에 날 생(生)이 합쳐진 말이잖아요. 먼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요.”

 

소설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정해진 답은 없다는 말,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사는 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잘 없다.

 

슬아는 그런 우리에게 선생님이다. 먼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살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 수도 있다고,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보여주는 선생님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팁.jpeg

 

 

[최아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