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붕어빵 한 마리 [사람]

했더라면의 늪
글 입력 2023.12.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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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jpg

 

 

머리부터 아니면 꼬리부터. 고민하느라 붕어빵이 다 식어버릴 지경이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붕어빵을 가장 맛있게 먹고픈 욕심에 한참을 이 녀석과 냉전 중이다. “에라 모르겠다, 앙!” 그렇게 허리를 공격당한 붕어빵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사했다.

 

팔백 원이 주는 이 행복은 다디달다. 그런데 만약 1분 전으로 돌아가서 머리부터 먹었더라면 포만감이 더 있었을 텐데, 꼬리부터 먹었더라면 더 오래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아주머니에게 한 개 더 달라고 했더라면 천육백 원만큼 행복했을 텐데 싶기도 하다. 붕어빵 하나로 쓸데없는 생각하는 것 같아도 우리는 살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나.

 

그때 다른 회사에 취직했더라면 지금쯤 더 높이 승진했겠지, 다른 종목에 투자했더라면 돈을 더 벌었겠지, 다른 남자를 만났더라면 연애가 더 즐거웠겠지 등. 다른 선택이 현실이었다면 나의 예상보다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안중에 없고 “~했더라면” 후렴구를 반복한다.

 

이 후렴구는 입에 착 달라붙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든 부르기 쉽다.

 

“못하면 남아서 재시험 봐야 하는 룰을 했더라면 우리 애가 시험을 더 잘 봤을 텐데요?”

 

“이거 시험에 나올 것이라 쌤이 미리 알려주셨더라면 제가 더 준비했을 거예요.”

 

“선생님이 자리 배치를 다르게 했더라면 우리 애가 그 애로부터 영향을 덜 받았을걸요?”

 

중독성이 강한 나머지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 들이밀기도 한다. 말도 안 되게 웃기다.

 

했더라면의 늪에 빠진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무장해야 한다. 여유로 무장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손가락 사이로 도망가는 바람처럼 여유는 쉽사리 머물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생각으로, 사람으로, 글귀로, 마음에 여유를 넉넉히 채워야 한다. 그렇군요 하는 여유, 한 귀로 흘리는 여유, 그럼에도 함께하는 여유.

 

“그렇군요, 재시험 룰이 있어야 학생의 성적이 향상된다고 생각하신다면 필요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처럼 저는 학생이 남아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일시적인 향상보다는 영어에 대한 이해와 흥미가 오르길 바랍니다. 멀리 보고 학생과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시험에 꼭 나와야지만 공부를 하는가 보구나? 모든 내용은 앞으로의 시험 범위라고 볼 수 있어. 문제들 서운하지 않게 꼼꼼히 관심 가지자. 그리고 나 숙제창에 미리 공지했음~”

 

“그런가요? 그럼 자리 재배치하겠습니다! 다만 교실에서 자리는 떼어놓을 수 있어도 셔틀에서는 어렵습니다. 주고받는 영향을 선으로 그을 수도 없고 어디든 따라다닐 수도 없으니 답답하네요~”

 

후렴구를 반복해서 여러 차례 들을 때면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내 안에 여유없음을 본다. 한 번은 버거운 순간이 있어 학생들에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엄마니? 매번 일일이 알려줘야 해? 난 너희 엄마가 아냐. 엄마처럼 좋을 수 없어.”

 

“저는 선생님이 엄마보다 좋아요.” “저는 엄마 말고 아빠요. 아빠보다 좋아요!”

 

입을 다물게 하는 학생들의 진심 어린 눈빛과 대답. 여유 포기하기를 포기해버린 순간이었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든 꼬리부터 먹든 허리부터 먹든, 한 개를 사든 두 개를 사든, 무엇을 했더라면 안 했더라면 어떠랴. 이전의 내가 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내가 하기에 나중의 내가 있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든 여유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하는 법.

 

후렴구에 빠지지 않고 장렬히 싸워 이기리라. 우리는 할 수 있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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