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의 테마파크로,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

'덕후'가 아니어도 괜찮아!
글 입력 2023.12.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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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입구를 본 순간 '놀이공원'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DDP 뮤지엄의 널따란 공간이 주는 개방감에, 1950년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트장 셔터 같은 입구는 저 바깥의 현실 세상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된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최고의 영화사 중 하나인 워너브라더스가 가진 수많은 IP를 떠올리자 벌써 신이 났다. 저 안에 나를 이루는 문화적 근간이 된 여러 작품 혹은 아이디어가 어트랙션이 되어 기다리고 있다.

 

그간 워너의 손이 닿은 수많은 TV쇼와 영화들을 편집해 만든 짧은, 그러나 놀이공원의 대기 줄에서 감상할 수 있을 법한 가슴 설레는 인트로 영상이, 그리고 그간의 역사를 담은 타임라인 월이 초입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친구와 함께 '이것도 워너구나!' 여러 번 감탄했다.

 

100년이란 긴 시간을 버티며 몸집을 불린 회사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세상에 <빅뱅이론>이라니, 나는 아직도 미국 문화에 흠뻑 빠져있던 10대 시절을 함께한 그 너드들의 드라마가 워너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그 유명한 프렌즈마저도 이곳의 어트랙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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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눈에 익숙해 보자마자 어! 하고 외치게 만드는 그 물탱크도 제작되어 타임라인 월 중앙에 아주 귀여운 크기로 배치되어 있다. 어디 명함 내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남들보다 많은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특히나 이게 너무나 반가워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할리우드에 온 것도 아닌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저 탱크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이 탱크가 단순히 워너 작품의 인트로에 삽입되는 로고 그 이상이라고 믿는다. 수많은 영화인이 영화라는 꿈과 환상의 예술에 비전을 갖게 하는 상징이자, 조금 거창하게는 인류의 문화적 발자국, 우리 모두 결국은 하나라는 공감의 표식이다. 국가와 사회, 인종이나 성별 등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영화에 열광하고 배우와 감독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은 이 마크가 달린 작품들이 세상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비단 워너뿐 아니다. 이건 그냥 모든 영화사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찬사는 (문화 지배적 측면에서 비판받더라도) 대형 스튜디오를 도저히 무시하고 지날 수 없는 법이다.

 

이렇게 워너의 역사를 한번 훑고 지나가면 본격적으로 어트랙션처럼 배치된 인기작들의 여러 소품이나 영상, 조형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배트맨> 시리즈로 대표되는 DC 유니버스의 테마로 들어가면 그 유명한 배트카와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피규어들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프렌즈>의 익숙한 소파와 보라색 플랫 도어, <해리포터>의 분류 모자, <그것>의 페니 와이즈가 서 있는 서커스 테마도 눈을 사로잡는다. 캐릭터들도 빼놓을 수가 없다. <톰과 제리>와 <루니툰즈>의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전시가 끝난 후 굿즈 샵에서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즐겁게 감상하고 나오려다가 괴롭고 행복한 신음과 함께 계산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도저히 제리가 들어간 버거를 먹으려는 톰의 피규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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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설치미술이나 회화작품처럼 도슨트가 필요한 어려운 전시가 아니라, 가볍게 즐기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의 사이버틱한 이미지를 감상하거나 곧 개봉할 <웡카>의 화려한 이미지를 감상하는데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있는 힘껏 즐기면 될 뿐이다.

 

나는 보통 전시를 가도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데, 이번 전시에선 아주 많이 찍었다. 당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캐릭터 혹은 상징물이 '나와 찍으시오' 하고 서 있는데 거기서 음, 귀엽구나. 하고 지나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벼운 전시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내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로,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마음 가볍게 종종걸음으로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고, 동반인과 함께 감탄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아쉽지만 혼자는 조금 심심한 전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리포터>를 혼자 보는 것보다 사람들이 꽉 찬 영화관에서 팝콘과 함께 즐기는 것이 훨씬 기억에 남는 경험이듯 말이다.

 

내가 갔을 땐 날씨가 좋지 않은 평일이어서 쾌적한 관람이 가능했다. 다시 보고 싶은 테마로 되돌아가 오랫동안 구경도 하고, 애니메이터들의 그림 한 장 한 장을 세세하게 바라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누구나 쉽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인만큼 평소엔 훨씬 북적거릴 테니 운이 좋았다고 하겠다.

 

긴 세월 차곡차곡 쌓인 IP와 그 뒷이야기들, 또 제작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이었던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 공간이 더 컸다면 어땠을까, 하는 즐거운 아쉬움을 뒤로하며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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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화 콘텐츠가 인생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땐 말로, 책으로 우리는 상상의 모험을 떠났고 이제는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이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지 못했던 섬세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선물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대표주자인 문화콘텐츠. 비용의 문제로 점점 제작에 어려움이 생기는 요즈음, 이런 공간에 있노라면 그럼에도 이것들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현실에 발이 묶인 우리에게 놀이공원은 자주 갈 수 없는 공간이지만 영화관과 TV 앞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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