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은 현실과 다름없다 - 사무라이 참프루 [영화]

글 입력 2023.12.18 17: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이 OTT를 살펴보다 발견한 단편영화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현재 티빙에 등록되어 있는 <사무라이 참프루>(2017)는 20분가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2004)와 동일한 제목이다.

 

 

common (2).jpg


 

2023년은 혼밥, 혼술, 혼코노 등 혼자 하는 일이 이미 익숙해진 세상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공연을 보고 여행한다. 하지만 ‘혼밥’이라는 키워드가 최신 트렌드 반열에 올라와 있던 2017년에도 그랬듯, 2023년에도 여전히 혼밥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윤성훈 감독의 단편영화 <사무라이 참프루>는 이러한 혼밥의 세계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


주인공 봉준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상상 속에서 이상형과 데이트를 하며 바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클럽에서 즐겁게 춤을 추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를 보는 것이다. 그러다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울리면 다급하게 음소거를 한 뒤 숨죽이는 것. 이처럼 봉준은 MBTI 유형이 I와 N일 것이라 예상되는 소극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캐릭터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있다면 봉준이 보는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일 것이다. <사무라이 참프루>의 주인공 무겐은 산발인 머리를 머리띠로 올려 이마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인 캐릭터이다. 무겐의 외향만 보아도 자신을 가꾸는 것은 귀찮아하지만, 그가 지닌 강렬한 눈빛과 말투가 투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TV에는 이러한 무겐이 식당에 들어선 뒤 물 한 잔만 주문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의 주인공은 건들건들하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편영화 <사무라이 참프루>의 주인공은 어떠한가. 택배 기사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현관문과 멀리 떨어진 베란다에서 택배 기사의 전화를 받는다. 집에 없냐는 기사의 물음에 ‘누구를 만나고 있다’라는 거짓말도 한다. 심지어 창문을 열어 외부소음을 더하는 철저함까지.


그렇기에 봉준은 참프루가 먹고 싶다. 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 조금이라도 연관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키나와에 홀로 여행을 가는 것은 상상으로만 할 수 있으니, 그나마 실현 가능한 ‘참프루 먹기’를 열망하게 되는 봉준이다.


그렇게 봉준의 참프루 먹기 대소동이 시작된다.


‘참프루(チャンプル)’는 일본 오키나와의 향토 요리로, 고야와 돼지고기, 두부, 통조림햄, 각종 채소를 넣고 한데 모아 볶은 볶음요리이다. 출근길에 봉준은 이러한 참프루를 판매하기 시작한 선술집을 발견한다. 이후 퇴근하고 불이 켜진 선술집 앞에 선 봉준은 망설이다 특유의 상상력을 발동한다.


봉준의 상상 속에서 선술집 직원들은 그가 들어오자 ‘혼자’임을 강조한다. 그 소리를 들은 손님들은 혼자 선술집에 온 그를 비웃고 촬영까지 하며 조롱한다. 즉 봉준의 상상력은 그의 사회적 불안을 극대화함은 물론,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결국 참프루 먹기에 실패한 봉준. 먹지 못해 더욱 갈망하게 되는 참프루는 봉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져만 간다. 입에 넣는 순간 폭죽처럼 터지는 경이로움을 기대하며 봉준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번 선술집 앞으로 간다. 봉준은 머뭇거리다 사장과 마주치게 되고 이내 선술집에 들어간다. 참프루를 주문하려 하지만, 1인 손님에겐 양이 많다고 만류하는 사장에 의해 사시미를 주문하고 만다.


다시 한번 실패. 집에서 나름대로 참프루를 만들어 보지만 그것 또한 실패. 영화를 보는 내내 참프루를 먹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실패의 연속은 봉준을 응원하게 만든다.


어느 날 봉준은 한 사건을 마주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택배 기사에게 친구와의 약속으로 인해 밖에 있다고 거짓말한 봉준은 문 앞에 택배 기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문을 열지만, 잘못 가져다 둔 택배를 바꾸러 온 기사와 마주치고 만다. 이러한 민망한 일도 겪었는데, 참프루 하나 시켜 먹는 게 뭐 두려운 일이겠는가. 그날 봉준은 퇴근길에 선술집으로 향해 참프루 하나를 시킨다.


그리고 한 입.


봉준은 그의 커다란 열망을 실현한 순간인데, 세상은 어째서인지 고요하게 계속해서 흘러간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바쁘게. 그리고 참프루를 몇 입 먹던 봉준도 어째서인지 혼란스러워 보인다.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는 듯.


*


‘참프루’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뒤죽박죽 섞인다’라는 의미가 있다. 참프루를 먹기 위해 나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견뎌내며 고군분투한 봉준은 평소 비빔밥을 해 먹었다. 분명 재료도 조리법도 다르지만, 한데 모아 섞는단 의미는 같은 두 요리가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영화에서 참프루가 ‘이상’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비빔밥은 ‘현실’을 상징할 것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이상은 대개 현실과 밀접하다. 모습은 달라도 그 본질은 현실과 다름없는 것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마치 선망하던 아이돌의 사생활을 듣고 실망하는 팬들의 모습과 기대감에 차 향했던 여행지에서 그곳의 이면을 보고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또 비빔밥과 참프루처럼.


과한 기대는 금물. 이 영화는 적당한 이상은 삶의 활력을 주지만, 과도하게 이상을 갈망하는 일은 결국 공허만 불러온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에디터 태그.jpg

 

 

[조유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