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재즈로 미래를 듣다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미래를 보는 재즈
글 입력 2023.12.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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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재즈


 

사실 나는 재즈에 무지하다. 처음으로 재즈와 안면을 튼 건 약 4년 전쯤이었을까. 네덜란드 유학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로테르밤의 찬바람이 스민 기숙사 방 안에서 재즈를 들었다. 재즈를 들으며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녹였다. 아는 음악이라고는 가요가 전부였던 나는 그렇게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재즈는 참 풍부한 음악이다. 음도 리듬도 지루할 틈도 없이 꽉 차있다. 텅 빈 방안이라도 재즈 한자락이면 방안이 가득 채워진다. 쓸쓸한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는 건 덤이다. 당김음은 나를 당기는듯 하고, 불협화음은 밀어내는듯 하다. 그렇게 재즈는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하며 결국엔 나를 포섭해내고야 만다.


내가 아는 것은 이렇듯 방구석 재즈가 전부였다. 그러던 내게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을 감상할 좋은 기회가 생기다니. 김영후는 타이틀에 공연자 본인의 이름을 내걸었다. 국내 재즈씬에 무지한 나는 그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 타이틀에 건 자신의 이름에서 그의 자부심과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빅밴드의 빅 띵킹(Big thinking)


 

'빅'이라는 수식어답게 빅밴드란 대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된 재즈 오케스트라를 뜻한다. 김영후 빅밴드는 걸출한 17명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영후는 베이시스트이면서 작곡가, 편곡가로 밴드를 진두지휘한다.

 

무대의 왼편에는 리듬을 담당하는 베이스, 드럼, 피아노가 있었고, 오른편에는 다양한 목관악기와 트럼본, 트럼펫이 있다. 멤버의 대부분은 30~40대의 젊은 연령대로 재즈를 향한 패기와 열정이 물씬 느껴졌다. 멀리서 보아도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김영후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고 한다. 그는 인류가 팬데믹을 극복하는 원동력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총균쇠>와 같이 다양한 인문학책에 영감을 받아 결국 '선한 의지의 순환'이라는 답을 이끌어냈다.


 

<프로그램 순서>

 

1. Dancing on the Floor


2. Cognitive Revolution (인지 혁명)


3. Network Song


4.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AI와 초연결)


5. Florescence (개화기)


6. New Discoveries


7.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

 


또한, 공연 제목인 '범인류적 유산'의 탄생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인지혁명으로 인과관계를 더욱 폭넓게 인지하게 되었다. 미지의 영역을 파헤치며 인식 범위는 나날이 확장되어간다. 그러나 옛것과 새 것이 조화롭기 전까지 조율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는 혼란이 야기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성과를 이룩해간다. 이러한 흐름을 반복하며 인류세는 만들어지고 우리는 '범인류적 유산'을 남긴다.

 

김영후는 이렇듯 역사의 수혜를 받음에 감사하고, 팬데믹의 위기 속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공연에 담았다.


 

 

미래가 보이는 재즈


 

곡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4번곡 Artificial Intelligence and Hyperconnectivity (AI와 초연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간의 화두이기도 한 AI를 주제로 하여 흥미로웠다. 웅장하고 촘촘한 재즈음은 초연결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했다.

 

도입부는 마치 우리가 AI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신선해서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그러다 곧 낯선 것에서 오는 불편하고 거북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정교한 곡조는 다시금 안정감을 찾아간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로 끄덕여졌다. 마치 한 사회가 AI를 흡수하기 전까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6번곡 New Discoveries도 좋았다. 해당 곡은 '미답의 영역을 탐구하여 성취를 거두어들인다'는 주제를 표현한다. 김영후는 -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 라는 뉴턴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선조의 지식과 지혜 덕분에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래의 후손들 역시 현재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으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발견으로 만들어지는 문명의 역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곡이었다.


재즈가 이토록 철학적이고 풍성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음악이었나. 음악은 감성적인 부분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공연장을 나오며 두뇌가 뜨끈해지고 시야가 트인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인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범인류적 유산'을 위해 작게나마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웅장한 소망을 품게 만드는 뜻깊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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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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