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겨진 내가 떠나가는 이들을 볼 때 - 뮤지컬 딜쿠샤

글 입력 2023.12.14 15: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금자 할머니의 인생은 '은행나무' 같았다.

 

노란 은행나무 밑에서 놀던 소녀는 결국 자신이 노랗게 활짝 핀 은행나무가 되어, 오래도록 딜쿠샤에 남아 사람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내게 이 뮤지컬을 경험한 시간은 가히 최고였고, 나 또한 집에 대한 의미와 흘러가는 것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대한 애틋함을 많이 느꼈다.

 


3472529176392896844_20231214072246376.JPG

 

 

인왕산 언덕 위 노란 은행나무 옆에는 노란색과 꽤나 조화가 잘 어울리는 붉은 벽돌집 딜쿠샤가 있다.

 

뮤지컬 딜쿠샤는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붉은 가옥을 배경으로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겐 어릴 적 내가 태어난 곳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장소일 수도 누군가에겐 목숨을 건지게 해준 안전한 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집이란 어떤 존재일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 나도 원래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늘 그리워하고 있다. '딜쿠샤'라는 집은 나에게 한 번도 이사한 적 없는 '우리 집'을 떠올리게 했다.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나를 품어주던 우리 집. 그리고 뮤지컬을 보며 사무치게 이입이 됐던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우리 집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그렇게 소식을 전해 듣고 싶었다. 내게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난 곳이자, 자란 곳. 가족들 모르게 울고 웃고 했던 날들도 우리 집은 다 안다. 늘 나와 함께였으니까. 집은 내게 안정적인 공간 그 자체다. 내겐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 늘 밖에서 보다 집에 더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내가 편하게 쉴 수 있게 나의 온도와 결로 이 집을 만들어갔다.


뮤지컬은 처음 경험했는데 직접 라이브 밴드와 함께 보는 공연이라 더욱이 생생했고 아직도 음과 가사가 기억날 정도로 음악이 좋았다. 정말 모든 노래가 다 좋았지만 특히 극의 두 번째 노래가 인상 깊었다. 빨래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들이 한 줄로 나와 노래를 부르는 구간. 메리와 여인들의 정신적 풍요로움이 느껴져서 음악이라 들으면서 나까지 다복다복 딜쿠샤와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뮤지컬 딜쿠샤는 미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 사는 노인 브루스 테일러와 딜쿠샤에 살고 있는 금자 할머니의 편지를 엿들으며, 딜쿠샤에 담긴 세월을 한편의 동화처럼 듣는다.


딜쿠샤가 처음 지어진 순간부터 금자 할머니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임을 깨달았지만, 언젠가 자신처럼 어린 소년이었던 가옥의 주인 브루스 테일러를 시작으로 딸 같은 봉순이와 툴툴거리지만 늘 곁에 있던 명자, 용감한 동팔이와 늘 밝고 맑던 써니 등. 딜쿠샤라는 가옥은 브루스의 아버지가 짓고 어머니가 가꾼 하나의 집에서 여러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집이 되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나는 집 자체에 금자 할머니가 투영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은행나무를 보며 금자 할머니의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떠나고 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다복다복 빨래터에 모이던 여인들과 메리, 알버트의 추억이 서린 공간이었는데. 일제에 압박을 받던 시절, 메리의 남편인 알버트가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고 외신에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알린 후, 메리 또한 위협을 받게 되고 일본 군인은 메리에게 집에서 나오는 것을 절대 금하는 명을 내렸다. 그 이후 일제의 공격에 딜쿠샤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했고 한 생명의 탄생도 지켜내주었다. 그렇게 큰 금자는 딜쿠샤를 자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지킨다. 딜쿠샤 또한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버틴다. 서울에서 가장 높고 좋은 집이었던 딜쿠샤는 불이 나고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며 서울에서 낮고 역사를 가득 머금은 집이 된다.


정말 슬펐던 부분은 안전 등급의 이유로 재개발 구역이 되어 이 딜쿠샤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나 또한 내가 정말 어릴 때부터 자주 가고 함께했던 모든 추억이 서린 외할아버지 집이 재개발 구역이 되어 떠나야 했을 때가 있어서 그 묘하고 서운한 감정을 잘 안다. 하지만 금자 할머니와 명자 할머니 봉순이는 딜쿠샤를 지킨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명자 할머니와 봉순이는 아파트로 넘어가게 되고 그렇게 금자 할머니는 딜쿠샤와 서로 어깨를 맞대며, 서로의 곁에 묵묵히 있는다.

 

그래서 결국 딜쿠샤의 마지막은 어떻게 됐냐고? 기적적으로 딜쿠샤는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그렇게 브루스에게 마지막 금자 할머니의 소식이 편지로 닿고 나는 마지막 즈음 나오는 노래를 듣고 감정이 올라왔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내 인생이지만"이라는 가사가 마음속에 꽂혔다. 그리고 이 마지막 노래에선 배우들도 관객들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각자가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눈물이 나고 이입이 됐던 건, 각자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 보고 세월이 흘러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 게 아닐까. 각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정말 충실하게 깨닫게 해준 따뜻하고 의미가 깊은 뮤지컬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무대에 있어서든 커튼콜 부분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그때 배우들의 감정에 이입이 많이 되어서 눈물이 가장 많이 나는 편이다. 커튼콜은 볼 때마다 참 벅차고 행복한 것 같다. 관객과 배우가 하나가 되어 몰입된 극이 끝나고 관객은 배우를 향해 감사의 답례로 뜨거운 박수를 건네고 배우들은 울기도 웃기도 하며 관객들에게 행복한 인사를 전한다. 참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모두가 일렬로 나와 줄을 서 노래를 부르며 극이 마무리될 때, 배우들 뒤로 조명이 비추어지고 뒤에는 노란색 은행나뭇잎을 연상하게 하는 노란 컨페티가 흩날렸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상황에 맞는 조명이 잘 사용된 무대 연출도 너무 좋았고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많이 만들어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한 점도. 이런 세심한 부분들이 극의 퀄리티를 높여준 것 같다. 그리고 모두 인상 깊었지만 금자 할머니 즉 김현숙 배우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인사를 하셨을 때,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이고 깊은 직업임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3472529176392620876_20231214072302199.JPG

 

 

여운이 정말 길게 남는 작품이다. 인생 첫 뮤지컬을 딜쿠샤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정말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또다시 종로에 들리게 된다면 그땐 나의 딜쿠샤가 되어, 딜쿠샤를 직접 보러 갈 것 같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황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