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친절한 친구 종이씨 [문화 전반]

종이가 요구하는 적극성
글 입력 2023.12.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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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음날 가방을 미리 챙긴다.

 

읽을 책과 노트, 필통에 아이패드와 텀블러까지. 미니 백을 좋아함에도 많은 짐으로 백팩으로 가방을 다시 싸게 된다. 아이패드 하나면 될 일이지만 구태여 종이책과 노트, 필기구를 챙긴다.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도 대중교통을 탈 때도 많은 사람이 전자기기를 사용한다. 종이의 영역이었던 독서와 필기까지 전자기기가 모두 대체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나 또한, 가방의 무게를 고려해 E-북 리더기를 구매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금방 중고 사이트에 처분해 버렸다. 종이책의 넘기는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주 글을 기고하는 지금도 글감을 고르고 글의 뼈대를 이루는 일엔 반드시 종이를 활용한다. 글을 기고할 땐 기고 사이트의 성격상 컴퓨터를 활용하지만 내 글은 무조건 종이를 거친다.

 

사실 아이패드 하나면 독서, 필기, 글쓰기 등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종이를 포기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아이패드보단 종이의 읽고 쓰기를 선호한다. 대체 종이의 어떤 점을 나는 포기하지 못하는가.

 

나는 종이가 내게 요구하는 ‘적극적 행위’를 사랑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왔지만, 종이는 늘 그대로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전달했던 종이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나는 종이의 이 ‘불친절함’이 좋다.

 

전자기기의 읽고 쓰기는 가볍고 편리하다. 후루룩 면발을 삼켜내듯 읽어낸 후 스크롤 한 번이면 금방 다음 내용이 나온다. 필요한 내용은 그대로 타자로 옮길 수 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도 돋보기 버튼 하나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달콤한 친절이다.

 

그러나 종이는 다르다.

 

읽으려고 해도 한 장 한 장 직접 넘겨야 한다. 넘기는 것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페이지에 담긴 모든 내용을 향유해야 비로소 종이 한 장을 넘길 수 있다. 앞에서 본 내용을 찾을 때도 직접 인덱스나 형광펜으로 표시해 둬야 한다.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릿속 장황한 내용을 종이에 쓰기 위해선 손이 바쁘다. 글자 한 자 한 자 힘을 담아 꼭 필요한 위주로 적어낸다. 떠올린 모든 내용을 적기엔 한계가 있기에 종이에 쓰기 전 꼭 써야 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필수다.

 

이렇게 종이는 아무것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더 많은 노력, 시간을 요구한다. 무엇인가를 쓰고 넘기는 수고를 마주하기 위해 내 머리는 바쁘고 손은 아프다. 종이 한 장에 담긴 것들을 모조리 맛봐야 하고, 종이 한 장을 채우기 위해 내 머리에 담긴 것들을 모조리 정리해 적어내야 한다.

 

나는 이렇게도 불친절한 종이와 함께한다.

 

그리고 종이가 주는 질감, 냄새, 소리도 느낀다.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편리한 것이 살아남는 세상이라지만, 종이가 요구하는 이런 ‘적극적 행위’가 영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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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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