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주에 정답이 있는가 - 괴물 [영화]

괴물_고레에다 히로카즈
글 입력 2023.12.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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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 처음 영화 <괴물>을 봤을 때 진하게 남은 건 감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감정이 내면에 가라앉았을 때 보인 건 바로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적힌 이 질문은 ‘미나토’의 일로 학교를 찾은 엄마 ‘사오리’가 교장 선생님께 한 질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맞는지. 물론 ‘사오리’의 질문에는 인간으로서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윤리가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선뜻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은 보다 이성적으로 느껴지지만 ‘마음’은 보다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나에게 인간의 마음은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면서 생긴 초기 우주와 비슷하다. 광활한 우주에서 이제 이 질문은 ‘이 우주에 정답이 있는가’로 다가온다.

 

<괴물>에서 인물들은 응당 그래야 하는 정상성의 범주를 긋는다. ‘사오리’는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정상성의 범주를 긋는다. 이는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괴물>에서는 추가적으로 선생님 ‘호리’가 긋는 전통적인 성별에 대한 범주도 나타난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정답을 가지고 ‘미나토’를 범주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이 정한 정답은 도로의 흰 선 안처럼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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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미나토’에게 ‘요리’는 새로운 존재다. 자신의 주위에 그어진 선을 넘을 수 있는 용기다. 주위에서 말했던 정답이 사실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다. 길을 가로막은 찰상을 치워 처음 선을 넘은 ‘미나토’가 마주한 건 팽창하는 우주, ‘빅 크런치’이다. ‘요리’와 함께 휙휙 돌리는 줄의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우주를 팽창한다.

 

원심력은 구심력의 반대 반향으로 작용하는 힘. 빅 크런치의 끝은 시간의 되감기. 뒤집어진 ‘요리’의 글과 함께 ‘미나토’는 항상 가야만 했던 방향에서 벗어나 높은 온도에서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분자처럼 모든 시간을 달리고 공간을 달린다.

 

이는 영화의 형식과도 비슷하다. 영화는 시간의 순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오리’의 시선, ‘호리’의 시선, ‘미나토’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3개의 구성에서 각 인물이 경험한 사건과 목도한 장면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시간의 전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인물들 간의 오해가 쌓인다. ‘미나토’에게도 그렇다. 빅 크런치의 끝은 대폭발이기에 그 폭발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어린 소년이 안타까웠다.

 

혼란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금 ‘사오리’의 인간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 질문은 정체성을 묻는다.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넓은 우주에서 ‘미나토’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머리에 카드를 올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맞추는 카드 게임처럼 소년은 들리지 않는 우주 속에서 질문을 외치며 자신이 누구인지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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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을 아는 듯했다.

 

‘호리’는 ‘미나토’와 비슷하게 싱글맘 아래에서 자랐고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고 말하는 등 유사점이 많다. ‘호리’의 애인은 그에게 좋은 선생님인 척하지 말고 자신을 보이라고 했다. ‘호리’에겐 아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다. 하지만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소년이고 소리를 크게 지를 줄 아는 소년이며 팔을 들고 달리는 소년이다.


얼굴을 흙으로 덮으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지만 ‘미나토’와 ‘요리’는 소멸을 통한 새로운 생(生)이 아닌 그대로의 삶을 선택한다. 새로운 삶이라고 칭하고 새롭게 살 수 있지만 그들은 변한 게 없다는 사실에 탄식이 아닌 안도하며 언제나 그랬듯 똑같이 뛰고 똑같이 포효하며 똑같이 웃는다.

 

‘미나토’가 달리며 얼굴을 쓸어내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얼굴과 함께 혼란을, 흙을 쓸어내리고 보이는 미소가 너무도 순수하다. 매실을 따고 좋아라 뛰는 순수함과 그런 자신 때문에 넘어진 친구에게 미안해하는 순수함이 그 미소와 함께 떠오른다.

 

우주에 정답은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일으킨 작은 바람이 매질이 되어 우주를 계속 팽창시킴에 따라 더 많은 가능성이 별들처럼 우주를 채운다. 무질서로 인해 충돌할 때도 있지만 괴물과 인간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이해한다면 흐르는 비로 오해와 혼란을 씻겨낼 수 있지 않을까.

 

유레카를 외치듯 이들의 포효 소리가 나의 우주를 팽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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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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