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 이런 밤, 들 가운데서

개인이 ‘우리’가 될 때 가지는 힘은 무력하지 않다
글 입력 2023.12.0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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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더 이상 찾아보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아프고, 그 아픔을 내 속이 견디지 못한 때부터인 것 같다. 사회의 많은 사건 사고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뉴스를 접하게 되면 자괴감이 든다. 외면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감정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또다시 소식을 찾아보지 않게 만든다.


위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연극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위로와 치유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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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이달 9일까지 공연하는 ‘이런 밤, 들 가운데서’는 제 12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부문 수상자 ‘설유진’ 연출의 신작이다. 전 회차 한글 자막 및 음성해설이 제공되며 장벽을 인식하고 허물기 위한 베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를 지향한다.


극은 뻐꾸기 ‘자유’와 앵무새 ‘사랑’이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는 뉴스를 통해 자유와 사랑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를 순서대로 이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 생각나는 이야깃거리를 토로하듯 자신의 과거, 뉴스, 특정한 날의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진행된다.


10월 29일. 대부분 매우 익숙한 날짜일 것이다.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우리는 참사에 대해 충분히 애도할 수 있었나? 자세히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눴나? 다음이 없게 대비할 수 있었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에겐 절망만이 남는다.


뻐꾸기 ‘자유’는 답답한 동물원을 벗어나 마음껏 하늘을 날다 죽는다. 앵무새 ‘사랑’이는 그보다 훨씬 늦게 죽었지만 ‘자유’와 같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는 노인의 집에 이웃은 계속해서 찾아간다. 냄새는 점점 더 심해지지만 그는 깨끗한 마스크와 과일을 가져다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극은 서로를 기억하고, 지지하고, 곁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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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111은 원하는 대로 무대를 구성할 수 있는 독특한 극장이다.

 

이 공연에서는 무대가 지워지고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공간이 된다. 배우는 관객과 함께 섞여 앉는 방식을 택하여 같은 일을 기억하고 경험을 나누는 공동체로 존재한다. 이 담화 속에선 어떤 발화도 자유롭고 안전하다.


베리어컨셔스를 지향하는 만큼, 최대한 공평하게 공연이 진행된다. 배우는 동그랗게 둘러싼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360도 회전하며 발화한다.

 

공연 중 장태춘의 ‘이런 밤’ 노래에 맞춰 배우들이 춤추는 장면이 있다. 가운데를 비추던 조명이 극장을 완전하게 비출 때까지, 배우들은 점점 바깥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가 같은 것을 감각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게 한다.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 기억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지속해서 물을 것이다. 개인이 ‘우리’가 될 때 가지는 힘은 무력하지 않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에게 묻고 싶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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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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