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정이 될 수는 없어도 - 요정처럼 생각하기: 로렌 차일드展

글 입력 2023.12.0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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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은 어린이였다. 하지만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걸거나 놀이터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어린이를 볼 때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때의 사진 외에 어린 시절의 나를 증언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때 읽었던 수많은 어린이책일 것이다. 나는 커버렸지만, 어릴 때 그토록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걸 읽던 시기의 내가 떠오른다. 개정판이 나와 꾸준히 다른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로렌 차일드의 <나는 토마토 절대 안 먹어>도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한국 초판 연도가 2001년이니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잊고 살던 이 책의 기억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요정처럼 생각하기: 로렌 차일드 展>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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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처럼 생각하기: 로렌 차일드展>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로렌 차일드의 전시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나는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 익숙할 로렌 차일드는 국내에서만 40여 권의 책이 번역 출판되었을 만큼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렌 차일드가 데뷔 이후 30년 가까이 가꿔 온 독창적인 세계를 총 6개의 섹션으로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 섹션 ‘로렌 차일드와 상상친구들’과 두 번째 섹션 ‘고얀이와 강아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로렌 차일드의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토마토 절대 안 먹어>를 비롯해 <난 학교 가기 싫어>, <나도 같이 놀고 싶단 말이야> 등 우리가 로렌 차일드 하면 떠올리는 많은 작품이 ‘찰리와 롤라’ 시리즈에 속해 있는데, 첫 섹션에서는 이 찰리와 롤라 남매가 관람객을 반긴다.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생 롤라는 제멋대로 뻗친 금발에 누군가를 째려보는 듯 장난기 넘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덴마크 여행 중 쉴새 없이 말하는 아이를 만나 영감을 받았고, 롤라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전한다. 말 많은 아이를 누구나 반기지는 않는 법. 롤라도 어른의 관점에서 착하고 순한 어린이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만의 고집과 주관이 뚜렷하고 상상친구를 열심히 만들어내는 일곱 살의 모습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취향과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어린이의 생생한 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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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로렌 차일드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을 만났다면, 세 번째 챕터 ‘책 속의 책’과 네 번째 챕터 ‘명작의 재탄생’은 로렌 차일드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특유의 콜라주 기법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순서이다.


‘책 속의 책’ 챕터에서는 '허브'라는 캐릭터가 잠든 사이 동화 속 세상에 떨어지며 겪는 모험을 그린다. 동화를 읽다가 동화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 자체는 이미 많지만, 로렌 차일드는 허브가 나오는 페이지를 오려서 동화 속 세계가 나오는 페이지에 붙이는 등 다양한 콜라보 작업으로 현실과 책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벽을 허문다. 아직 글 읽는 게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도 책의 의미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폰트 종류와 배치에도 많은 신경을 쓴 부분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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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명작의 재탄생’ 섹션에서는 <비밀의 화원>, <말괄량이 삐삐>, <메리 포핀스>와 같이 아동문학계에서 유명한 작품으로 작업한 로렌 차일드의 작업물을 만날 수 있다.

 

어른 관람객에게 좀 더 매력적일 작품이 많은 섹션이기도 하다. 키치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던 앞 섹션과 달리 이번 섹션에서는 보다 성숙하고 섬세한 작업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있던 로렌 차일드의 작품과는 또 다른 작품을 다수 볼 수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섹션이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전시 제목과 같은 ‘요정처럼 생각하기’이다. 이 섹션에서는 2021에 나온 로렌 차일드의 신작 <요정처럼 생각하기> 속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인 이 이야기에서 로렌 차일드는 대가 없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마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모여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양한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장면은 작가가 이 책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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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션까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왜 '요정처럼 생각하기'가 이 전시의 제목이 되었을까 생각해봤다.

 

단순히 작가의 신작 제목이라는 것 외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사실 요정'처럼' 생각하는 건 어른의 방식이다. 어린이는 요정'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요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정처럼 생각하기'는 3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해 온 로렌 차일드가 자신의 책을 읽고 자란 어른들을 위해 붙인 제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덧 요정이 되는 법을 잊어버리고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작가는 모두가 아무러지 않게 요정이 되던 시절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고 말한다. 경계 짓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여러 세상을 넘나들던 그때를. 단순히 동심을 되찾으라는 의미는 아닐 테다. 과거를 회상하며, 우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그 시절을 살고 있는 지금의 어린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 어린이였던 나를 떠올리며 어린이에게 좀 더 관대해진다.

 

요정이 될 수는 없어도 요정처럼 생각해 보는 것. 이 전시를 보는 어른들에게 주어진 몫은 그 정도일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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