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 나 사이에 있던 점과 선과 면, 그리고 마음 [영화]

글 입력 2023.11.30 03: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ommon.jpeg

 

 

하은은 테이블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물 잔을 바라본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물 잔은 위태로운 하은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반려견 제리의 죽음, 다친 다리로 갈 수 없게 된 수학여행,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까지. 의도하지 않은 상황들이 하은을 계속해서 모서리 쪽으로 밀고 나갔다.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테이블 위의 물 잔처럼 말이다.

 

물 잔이 정말 떨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할 때 즈음, 세미가 물 잔을 들어 올렸다. 하은은 세미에게 네가 날 살렸다고 이야기한다. 세미는 무슨 이야기냐며 넘어가지만, 하은에게 세미는 그녀를 쏟아지지 않게 잡아주던 든든한 손이다. 날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던 소중한 사랑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미에게 하은도 같은 의미일지 모른다.

 

둘 사이를 둘러싸고 있던 말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지켜주었다.

 

 

 

캠코더

 

common-2.jpeg

 

 

세미와 하은은 함께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하은의 캠코더를 팔기로 한다. 캠코더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둘은 서로의 모습을 기록한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듯 순간을 영원히 남기는 캠코더는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세미와 하은의 마음을 닮았다.

 

세미는 하은과 다툰 후,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른다. 세미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과는 달리 세미의 상상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상상 너머 제주도에서도 캠코더로 서로를 기록하는 둘. 그 상상에는 캠코더를 팔아야 수학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전제도, 다리를 다친 하은이의 상황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저 둘만의 추억을 남기고 기억하고 싶은 세미의 마음만이 가득하다. 사랑의 투정 같아 보이던 세미의 노래는 순간 어떤 간절함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앵무새 키링

 

common-5.jpeg

 

 

세미는 자신이 키우는 앵무새 ‘조이’와 닮은 키링 2개를 준비한다. 하나는 자신의 가방에, 하나는 하은의 가방에 매달고 좋아하는 게 영락없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왜 하필 조이를 닮은 키링이었을까? 조이는 세미에게 단순한 앵무새가 아니다. 세미에게 조이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게 하는 존재이다.

 

세미에게 하은이는 수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내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세미는 하은이에게 조이를 건넴으로써 자신의 입에서 맴돌던 수많은 ‘사랑해’를 전달한다. 끝내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조이가 하은이 곁에서 수도 없이 들려주기를 바라며.


 

 

진식이

 

common-3.jpeg

 

 

세미와 하은이는 캠코더를 팔러 가는 길에 길 잃은 떠돌이 개를 만나 ‘진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식이는 다시 사라지고, 세미는 우연히 진식이를 찾는 전단지를 발견하게 된다.

 

둘은 해가 저물고 난 후 다시 진식이를 만나게 된다. 진식이는 자신과 같은 떠돌이 개들과 함께 좁고 어두운 컨테이너 안에서 지내고 있었다. 세미는 전단지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로 진식이의 주인에게 전화를 하고, 진식이는 결국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 다시 ‘똘똘이’로 불리게 된다.

 

하은은 감사 인사를 전하는 똘똘이의 주인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다. 우리는 그 눈물에서 영화가 전달하려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하은의 눈물은 똘똘이처럼 세미도 자신의 곁으로 돌아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진식이가 똘똘이로 다시 불리게 된 것처럼, 다시 세미를 ‘훔바바’로 부를 수 있기를.

 

 

*위의 제목은 이현호 작가님의 저서 <점, 선, 면 다음은 마음>을 인용했습니다.

 

 

 

이연재-3.jpg

 

 

[이연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