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영화]

영화 <라스트 버스>
글 입력 2023.11.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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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라스트 버스(The last bus,2021)>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당신.

 

그 목적지가 어디라고 다른 누구에게 말해줄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한가?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목적지를 바꾸지 않을 생각이 있는가? 달리는 것을 시작할 때, 그만 두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는가?

 

 

라스트 버스 포스터.jpeg

 

 

여기 이 질문들에 모두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 <라스트 버스>의 주인공 토마스 하퍼(약칭: 톰)이다. 그는 가방 하나, 여정에 관한 계획을 적어놓은 수첩 하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지도 하나를 들고, 랜즈엔드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는 90대 노인이다.

 

영국 최북단인 존오그로츠에서 남서쪽에 있는 랜즈엔드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니. 톰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가 버스를 이용해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무리인 상황이라고 보여질 것이다. 하지만 톰의 집념과 다짐은 몸 상태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다. 그의 뚜렷한 목적지는 그가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도착'에 대해 더 갈망하게 했다.

 

과연 톰이 인생을 반추하며, 최종 목적지 랜즈엔드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86분간 톰을 응원하며 인생의 '목적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 <라스트 버스>를 소개한다.

 

 

 

#랜즈엔드로 떠나다



라스트버스 2.png

 

 

정원을 가꾸던 아내 메리는 톰의 곁을 떠나게 되고, 톰은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 가꾸는 사람이 없어진 정원은 결국 대부분 시들게 되고, 그 시든 식물들은 병들고 나약한 90대 노인이지만, 주변에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톰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단출한 짐을 들고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나이가 든 톰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나온 그 통로가, 사실은 톰-메리 부부가 존오그로츠로 이사를 왔을 때 함께 지났던 통로라는 것을 보여주며, 세상에 홀로 남은 그를 더 외로워보이게 한다.

 

랜즈엔드까지 가는 여정은 매우 길기 때문에, 쉽지 않다.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여러 지역을 거쳐야 하며, 여러 사람을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톰에게는 여러 번의 시련이 찾아온다. 여정을 그만둘 수도 있는 큰 시련들이지만, 톰은 포기하지 않았다.

 

 

메리: 가자고 했을 때, 갈 걸 그랬어.

톰: 지금도 안 늦었어.

메리: 그럴까?

톰: 꼭 데려가줄게. 약속.

 

 

톰이 젊은 날의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랜즈엔드로 꼭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시련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할 방해물조차 될 수 없었다.

 

톰은 젊은 시절 정비공이었다. 젊은 시절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톰은 고장 난 차를 보고는 과거의 향수를 맡은 사람처럼 차를 정비하는 것에 도움을 주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손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겉으로는 기력이 없어 보이는 노인일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찬란했던 한순간의 기억과 추억을 엔진으로 삼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버스를 타고 랜즈엔드로 향하는 여정은, 한적한 지역을 지날 때도, 해가 환하게 떠 있을 때도, 해가 지고 도시의 불빛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때도, 젊은이들의 소음이 가득한 거리를 지날 때도 있다. 톰의 시선을 따라갔을 때 보이는 버스 밖의 이러한 풍경들은 인생이 화려할 때도, 어두울 때도, 환할 때도, 수수할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톰도 그런 풍경을 거쳐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톰은 여행하며 가방을 훔쳐 간 소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던 청년, 무료 탑승 카드를 보고 버스에서 쫓아낸 버스 기사 등의 인물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된다. 시련이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고, 멀리서 보았을 때 평탄해 보이는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굴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모든 시련이 상쇄될 수 있는 건, 더 많은 배려와 따뜻함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잠든 탓에 늦은 밤거리를 전전하고 있던 상황에서 흔쾌히 집으로 초대한 트레이시와 피터 가족, 버스에서 쫓겨난 톰을 도와준 우크라이나인들, 지팡이를 손에 쥐어준 마리아 등 톰도 더 많은 따스함을 받았다는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은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수 있는 난로가 많다는 게 아닐까. 여러 개의 얼음도 하나의 난로로 녹을 수 있듯이.

 

 

 

#버스 창문에 성에가 생길지라도, 괜찮아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매우 강하나, 폐암, 간암, 신장암을 투병중인 톰은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톰의 시선이 닿는 버스 창문에도 성에가 생기게 된다. 투명하게 밖의 풍경이 잘 보이던 창문은 이제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 그 순간 톰은 또 한 번의 시련에 빠지게 된다.

 

 

내가 저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면, 내 발로 걸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소?

그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소.

 

다른 방법이 있을거요. 그러니 막지 말아줘요.

 

 

버스 지붕이 날아갔으나 기적적으로 산 톰.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되고, 의사들은 톰이 암을 투병한다는 사실을 차트를 통해 알게 된 후, 입원을 권유한다. 그러나 톰은 본인의 시한부 인생을 병원에서 보내는 것보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

 

점점 병세가 짙어지는 탓에 스스로도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톰.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버스 창문에 성에가 생기듯, 우리 인생에도 성에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 성에는 예고하지 않고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풍경을 잘 볼 수 없게 막는 성에는 매우 답답하겠지만, 그럼에도 톰처럼 계속해서 정진하면, 마침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톰을 보고 배울 수 있다.

 

 

 

#하퍼에게 가방은 어떤 의미일까



라스트버스 4.png

 

 

어떤 상황에서도 톰은 가방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톰은 버스에서 잠이 들어 정류장에 제대로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기절하게 된다. 이때 트레이시-하퍼 부부에게 발견되고, 톰이 눈을 뜬 그 순간에 한 첫 마디는 "내.. 내 가방은요?" 이다. 이 상황에서 알 수 있다시피, 톰에게 가방은 그저 소유물이 아니다.

 

톰은 여행의 시작에서도 가방과 함께였고, 젊은 시절 아내 메리와의 일상에서도 가방과 함께였다. 얼굴에 생긴 주름의 개수만큼, 그 가방에는 흘러간 메리와의 추억이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부시게 행복했던 인생의 순간에 함께한 사람인 메리와 세상에 남겨놓은 발자취를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놓은 것이다.

 

톰이 가방을 그렇게도 지키려고 했던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나오게 된다. 어릴 때 죽은 딸의 무덤을 찾아간 톰은 톰-메리-마가렛(딸)이 함께 찍힌 가족사진을 가방에서 꺼내게 된다. 그 사진을 묘비에 올려놓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후 최종 목적지인 랜즈엔드의 바닷가에 도착하는데,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바다에 가까이 다가간다. 다시 한번 가방의 문을 열게 되고, 메리의 노란색 스카프로 둘러쌓여진 틴케이스를 꺼낸다. 그 틴케이스를 엶으로써 비로소 톰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며, 메리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톰도 이후 아픔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이후 장면에서 보여준다.

 

#bushero 

 

많은 시련을 딛고, 결국 약속을 지킨 톰. 톰의 버스는 그 목적지에서 멈추었지만, 그가 세상에 전해준 메세지는 바람을 타고 오프라인,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중이다.


 

 

#인생이라는 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는 그대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영화<라스트 버스>는 각종 버스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을 보여주며,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 사건, 일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톰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투영해서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생 일대기를 관객들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처음 이 글의 문을 열 때 했던 질문이다. 각자 생각하는 인생의 목적지는 매우 다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인생이라는 버스를 타고 끊임없이 그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목적지는 변할 수도 있고, 중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 없어진 목적지 때문에, 어떤 버스를 타야 할까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버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목적지이든, 가고 싶은 목적지/가야 하는 목적지를 정하기만 한다면, 다시 그곳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버스가 달릴 기름을 충분히 채운 채로, 달리면 된다.

 

그러한 그대의 강한 의지는 반드시 그 목적지로 도달할 수 있게 한다. 마치 톰의 라스트 버스처럼.

 

 

 

아트인사이트_이나경.jpeg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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