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으로 겨울을 피해 달아나기 [음악]

겨울을 사랑하기 위한 추천 앨범 3
글 입력 2023.11.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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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찬 바람이 파고든다. 일기예보에 마이너스 기호가 보인다. 오늘은 길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피해 다니는 동시에 목도리 속으로 한껏 웅크리며 걸었다. 한없이 껴입고 싶었다. 가을이 어디에 있든 이것은 명백한 겨울의 시작. 분명 얼마 전까지 여름이었다. 하나의 지구에 완전히 상반되는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다. 몇 개월 사이에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반팔에서 코트로, 아이스크림에서 붕어빵으로, 에어컨에서 보일러로, 그늘에서 햇빛으로. 매년 변화를 맞이하지만 매번 새삼스럽게 낯설다.

그렇게 더웠으면서 이토록 추워질 수가 있는 건가. 이게 순리라지만 너무 과격한 거 아닌가? 해묵은 코트를 꺼내 들며 속으로 마음껏 투덜거린다. 투덜거림은 내가 겨울에 순응하는 방식. 집에 돌아오니 방바닥이 빙판처럼 차다. 기온이 갈수록 체온과 서먹해진다. 내일 아침에도 샤워하러 가는 길이 두렵겠지. 집을 환기하는 일은 큰마음을 먹는 일과 같겠지. 그리고 어김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거리.

이번 겨울은 또 무엇으로 버티어 내나.

나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계절의 변화도 좋아하지만 겨울만큼은 그 섭리가 원망스럽다. 추위를 잘 타는 내게 겨울은 너무 춥다. 너무 춥다는 건 나의 시련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 시련을 겪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하지만 소설의 모든 문장이 암울하지만은 않듯이 겨울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 역시 느끼는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크리스마스, 화려함과 포근함이 공존하는 그날, 그 반짝이는 거리를 거니는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이상한 마법은 온전히 겨울의 것이다. 그리고 목을 감싸는 부드러운 목도리, 따끈한 어묵 국물, 몸이 녹아내리는 피부의 쾌감, 사랑에 보온 효과까지 생겨나는 애틋한 포옹까지…

겨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따스함은 순간에 불과하기에 소중하게 다가온다. 일상처럼 존재하는 봄의 따스함보다 더 깊은 행복감을 선사한다. 다만 우리는 겨울이 줄 수 없는 따뜻함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겨울을 사랑하기 위해 겨울을 거슬러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겨울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겨울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이맘때쯤 내가 다급히 하는 일은 음악을 준비하는 것이다. 따뜻함은 촉각의 것이라지만 실은 복합적인 감각이라 청각 속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른 감각들은 준비하지 않아도 겨울 속에 관습처럼 자리잡아 있지만 유독 청각만은 모호하다. 그래서 겨울이 두려운 나는 청각까지 총동원해 이겨낼 준비를 단단히 해두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엄선한 겨울 앨범들. 따뜻하거나, 혹은 오히려 따뜻함을 등지고 있어 목뒤를 데워주는 음악들.
 
 
 
1. Homeshake, [Under The W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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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쉐이크(Homeshake)는 몬트리올 출신 음악가 피터 세이거(Peter Sagar)의 솔로 프로젝트이다. 싱어송라이터인 맥 드마르코(Mac Demarco)의 밴드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후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2013년부터 ‘Homeshake’라는 활동명으로 음악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의 음악은 나른하고 때론 우울하지만 오히려 우울할 때 들으면 기분이 나아지는 면이 있다.

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Under The Weather’ 역시 잔잔한 평화가 내내 감돈다. 실제로 그는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완성할 당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지라 한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앰비언트 음악과 스타트랙을 벗삼아 지내며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든 멜로디가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다. 남들에게 들려주기보다 스스로 밀접한 음악은 솔직하다.
 
그 내밀한 마음이 내게도 위로를 건넨다. 우울한 어느 날 다 필요 없고 기분만 조금 나아지기를 바랄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가만히 누워있기 좋은 앨범. 나에게 조언을 건네진 않지만 기나긴 겨울임을 그저 순응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만 같다. 마지막 트랙은 단 28초지만 제목은 ‘Reboot!’, 재시동이라는 뜻이다. 기어코 봄은 오리라는 듯이.

한 트랙만 꼽자면 2번 트랙인 ‘Feel Better’. 따스함의 상징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단순히 추운 날씨에 긴장한 몸을 녹이고 생각 없이 나른해지기에도 좋은 앨범. 물론 자장가로도.
 
 
 
2. Luiz Bonfa, [Solo in Rio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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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노바에 계절감이 있을까? 봄은 당연하고 여름, 가을을 거쳐 물론 겨울에도. 늘 따스한 사운드가 매서운 추위를 한순간에 잠재우기도 한다. 보사노바는 지옥의 존재를 모르는 한 천사의 흥얼거림 같다. 나는 가끔 외롭고 적막하다고 느끼면 보사노바를 배경음악처럼 틀어 놓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행복감이 집안 전체에 감도는 느낌을 받는다. 루이스 본파(Luiz Bonfa)의 기타 연주도 그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

그는 1922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기타리스트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과 함께 동시대에 활동하며 브라질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2005년에 발매된 1959년작 [Solo in Rio 1959]는 그의 정확하고 차분한 기타 연주를 주축으로 평화롭게 흘러간다. 겨울에는 종종 매섭고 차가운 바깥과 대비되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평화와 고요함에게 몸을 기대고 싶다. 그럴 때 배경음악처럼 곁에 두기 좋은 앨범. 한 트랙마다 대부분 2분 내외라 부담 없고 31곡이 수록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틀어놓기 제격이다.
 
종종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겨울에는 찾아보기 힘든 라틴 특유의 흥겨움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낭만주의적인 그의 작곡과 연주를 듣다 보면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 삶이 가득 머금은 평화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개인적인 추천 트랙은 ‘A Brazilian in New York’. 뉴욕에 홀로 당도한 이방인의 복합적인 심경이 하나의 서사처럼 다가온다.
 
 
 
3. Yo La Tango, [Pain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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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Yo La Tango’는 90년대 미국 인디 록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최근 17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1993년에 발매된 6번째 앨범 ‘Painful’은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한 록’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들의 앨범 중 명반을 꼽으라면 아마 이 앨범은 아니겠지만, 겨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앨범은 내겐 ‘Painful’ 같다.

사운드는 또렷하기보단 슈게이징 스타일로 듣기 좋게 뭉개져 있다. 몽롱하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렬하고 아이코닉한 밴드 사운드를 포기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강하게 빛난다. 겉보기엔 고요해 보이는 겨울, 밖에 나가보면 섬뜩한 찬 공기와 세찬 바람이 불고 있는 것처럼. 고독하지만 모든 시공간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음악적 풍경 앞에서 나는 무력하게 숭고한 마음뿐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동트기 직전 새파란 새벽, 낯선 나라의 시골 마을에서 끝없는 평원을 두려움 없이 홀로 걷는 것만 같다. 앨범 내에서 대중적인 트랙은 ‘from a motel 6’와 ‘nowhere near’, 개인적인 추천 트랙은 첫 번째 트랙과 마지막 트랙.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어디까지 도달하는지 이끌려 가보길 권장한다.
 
이외에도 추천 앨범은 가득 쌓여있지만 본인만의 겨울 플레이리스트 역시 간직하길 바란다. 곰곰이 고민하고 선정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계절을 대하는 태도와 감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계절에 몸을 맡기고 순순히 따라가는 우리는 한 번뿐인 삶에서 가득히 생생할 것이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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