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5년을 함께한 선율, 트리오 콘 스피리토

글 입력 2023.11.11 14: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여느 예술이 그렇듯 음악도 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그 개성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처음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팀을 만들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걷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본다. 오히려 해체와 멤버 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가요계에서 오래된 밴드나 팀을 볼 때면 괜히 신기하고 반갑다.

 

 

20231017212543_hoqkwipo.jpg

 

 

부끄럽지만 트리오 콘 스피리토의 창단 15주년 콘서트 소식을 보고 나서야 클래식 연주계에도 '팀'이 있다는 걸 알았다.

 

2008년에 결성된 트리오 콘 스피리토는 정진희(바이올린), 정광준(첼로), 진영선(피아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5년간 멤버 교체 없이 활동해 온 이들은 국내 무대는 물론이고 국제 콩쿨 무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수많은 부분에서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왔다.

 

지난 11월 3일, 트리오 콘 스피리토가 창단 15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약 2시간 가량 진행된 음악회의 시작을 알리는 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3중주 6번 G장조 K. 564]였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세 사람은 악기를 조율하는 시간을 짧게 갖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를 시작으로 연주를 이어나갔다.

 

평소 흔히 듣는 모차르트 곡은 아니었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만들어내는 화음에서는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하고 화려한 느낌이 가득했다. 15주년을 축하하는 금요일 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작이었다.


2악장은 1악장보다는 차분하게 시작되어 좀 더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1악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가장 두드려졌다면 2악장에서는 피아노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묵직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첼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후반부에 다시 빠른 템포로 돌아오며 2부가 마무리되자 한결 풍성한 느낌의 3부가 시작되었다. 론도 형식인 3부는 처음 제시된 선율이 후반부에도 화려하게 변주되며 막을 내렸다.

 

 

KakaoTalk_20231109_220759321_02.jpg

 

 

모차르트의 곡이 끝나고 잠깐의 인터미션 후 다음 순서로 슈만의 곡이 시작되었다. [피아노 4중주 E마이너장조 OP.47]이다. 슈만의 곡을 연주할 때는 게스트로 최은식 비올라 연주자가 함께해 주었다.

 

슈만의 곡은 앞선 모차르트의 곡과는 사뭇 다른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시작해 1부 중반부를 지나면 점점 힘차고 경쾌해졌다. 특히 장대비가 쏟아지듯 매우 빠르고 강하게 연주된 피아노와 첼로 소리로 채워지던 2악장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은 다시 1악장의 분위기로 돌아가 첼로의 선율이 주를 이루는 우아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2악장을 속도에 감탄하며 감상했다면, 3악장과 4악장은 네 개의 악기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놀라워하며 들었다.

 

곡 전체의 바탕이 되어주는 피아노, 느리게 곡을 감싸안는 첼로, 그 위를 뛰노는 날카로운 바이올린, 여기에 비올라까지 추가되어 균형을 이뤘다. 각각의 선율이 개성 있게 흐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곡이 마무리되었다.

 

 

KakaoTalk_20231109_220759321_03.jpg

 

 

마지막 순서는 라벨의 [피아노 3중주 A마이너단조 M.67]이다. 나에게 라벨은 모차르트, 슈만에 비하면 다소 낯선 음악가였다. 음악가 이름보다 유명한 곡, '볼레로' 외에 다른 곡을 들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가장 궁금했던 순서이기도 하다.

 

불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곡은 익히 들어 왔던 클래식과는 좀 결이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로 전개되는 곡을 들으며 확실히 라벨이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에서 멀지 않은 최근에 활동한 음악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2악장은 1악장보다 다소 난해한 느낌으로 연주가 흘러간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대로, 첼로는 첼로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각각 다른 악보를 연주하듯 불협화음처럼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음악으로 합쳐지고, 그러다 다시 각각의 길을 가며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3악장은 정신없이 흘러가던 2악장과 대조적으로 낮은 음이 조용하고 느리게 울려퍼진다. 2악장과 달리 각 악기 소리가 겹쳐지는 부분보다 악기 하나 하나의 소리를 음미할 수 있는 미니멀한 구성이 돋보였다. 3악장이 끝나고 4악장에 접어들면서부터 곡은 화려함을 되찾는다. 세 개의 악기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첼로의 음색이 극대화되며 곡이 마무리된다.

 

 

KakaoTalk_20231109_220759321_01.jpg

 

 

1시간 50분 동안 연주가 이어지며 계속 눈에 띄었던 건 세 사람이 함께하는 호흡이었다. 한 악장을 끝내고 새로운 악장으로 넘어갈 때, 한 곡을 새롭게 시작할 때, 세 사람이 서로의 눈빛을 짧게 교환하며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관객석에서도 잘 보였다. 무엇보다 연주를 이어가는 세 사람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관객 입장으로서 공연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다양한 위기를 넘기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되는 팀에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아우라'가 있다. 그것은 멤버 개인이 가진 능력의 단순한 합을 넘어서, 오로지 팀일 때만 드러나는 고유한 색깔이다. 이번 트리오 콘 스피리토의 15주년 기념 공연도 그 색이 잘 느껴졌다. 각각의 악기가 따로 노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한 곡으로 합쳐지는 라벨의 곡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콘서트홀을 나서며 이 팀의 20주년, 30주년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