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 G는 파랑

글 입력 2023.11.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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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감상을 마구 나누고 싶어 합니다. 상당히 수다스러운 사람이거든요. 음악을 듣고 나면 음악에 대한 배경을 알고 싶어지기도, 이 음악을 듣고 나서 떠오르는 감상자의 견해를 듣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생각을 나누고 있듯이요.

 

 

G는 파랑_표지_앞표지.jpg

 

 

김지희 저자는 피아니스트이자 오페라 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쿠스틱 위클리]라는 주간 메일링 서비스를 진행했는데요. 만 명 정도가 구독한 [어쿠스틱 위클리]의 글과 단행본을 위해 새로 쓰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짧고 쉽게 읽히는 글에 책을 금방 읽었는데요. 저는 두 가지 점을 특히나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청각의 공감각적 전환과 저자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김지희 저자가 음악을 다른 감각으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최근의 향수 시향기를 글로 적어보며 후각적 경험을, 그 외의 감각으로 바꾸어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향에서 차가운 가죽을 떠올리기도 하고, 하프 연주 소리에 빗대기도 하고, 아이보리색 니트와 어울릴 것이라고 설명하며 향이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노력했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지희 저자는 감상을 '감각으로 하는 상상'이라고 정의하고, 본인의 음악 감상법을 공유합니다.


작곡가를 위한 상상도 있으나, 이 공감각적 상상이 특히나 더 재미있었습니다. 책의 제목과 일치하는 'G는 파랑'. 저자는 G장조에서 다채로운 파랑이 들린다(p.34)고 표현합니다. 표현과 함께 G장조의 음악을 들으니 그 느낌이 와닿았습니다. '솔(G)'의 맑고 투명한 소리-역시나 공감각적이네요-가 청량한 파란색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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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은 파도, 2악장은 파랗지 않은 것을 파랗게 기억하는 장면, 3악장은 페인트 사탕. G장조의 푸름이 악장마다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그 묘사와 함께 25분가량의 곡을 집중해 들었습니다. 그중 2악장의 '파랗지 않은 것을 파랗게 기억하는 장면'이라는 묘사가 와닿았습니다.


[엄마가 주먹밥을 싸들고 온 초등학교 운동회는 분명히 날씨가 흐렸는데, 시원한 파랑으로 기억합니다. 아빠에게 보여준 우리 가족 그림에는 배경이 없었는데, 따뜻한 파랑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파란색 스웨터가 보이고, 같이 간 여행에서는 함께 하늘을 본 적 없는데 파란 하늘만 기억납니다.] - p.35


저는 2악장이 시작하고, 어떤 것을 회상할 때 올라오는 아련함을 느꼈습니다. 그때가, 혹은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이 슬프지만 그때의 슬픔을 나름대로 극복했기에 웃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의 감정 말입니다. 저는 이때의 파랑을 회색빛이 가득한 파랑으로 연상했습니다.

 

2악장이 마무리될 때에는 피아노 소리가 마치 별이 반짝이는 소리와 같다고 느껴졌는데요. 그 부분에서 기존의 탁한 파랑이 다시 투명해진 파랑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탁한 파랑.jpg

 

 

공감각적으로, 다시 말해 내가 가진 온 감각을 활용해 음악을 이해하는 저자의 감상법. 그 감상법이 음악을 온전히 나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베토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본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베토벤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피아노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에도, 음악 예비 학교를 위한 입시곡을 준비할 때에도. 졸업 독주회와 짝사랑하던 대상도, 모두 베토벤과 엮여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빛날수록 어둡고, 예쁠수록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좋아한 것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그의 고통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 p.162


본인의 모든 순간에 베토벤이 함께 했지만, 그의 음악이 고통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이후로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저자. 저자의 베토벤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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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연주회 당시 "커서 피아노와 물만 있다면 나는 살 수 있다(p.161)"라고 엉엉 울던 저자. 눈물이 그치지 않아 엉엉 눈물 흘리며 연주했던 <월광 소나타>는 어떤 소리를 띠고 있었고,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 생각해 봅니다. 안 그래도 슬픈 음악이 더 구슬프지 않았을까요.


음악 그 자체를 감상할 때와, 음악이 이 사람에게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며 음악을 감상할 때. 그 두 생각의 갈래가 다르게 뻗어남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책에는 한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자의 공감각적 감상, 작곡가와 곡에 대한 정보, 아니면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G는 파랑'은 모든 감각으로 음악을 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마치 쌀을 오래 씹을 때 쌀이 더 달콤하고 고소해지듯, 그렇게 곱씹어진 음악은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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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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