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기(The Self)'를 강하게 하는 힘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11.0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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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궁금할 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찾는 타로와 사주, 신점 그리고 주역점. 비합리적이라 여겨지면서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심리 상담소보다 점집이 더욱 인기라고 한다. 내가 사는 대학로 거리에도 적은 돈으로 재미 삼아 사주와 타로를 볼 수 있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다. 수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 번도 사람이 비었던 적이 없는 신기한 포장마차 거리이다.

 

이 거리를 지나다니며 항상 미래를 예측해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다. 점을 본다는 것은 현재의 불안을 돈을 내어 잠시 가라앉히는 의존성 강한 행위라고만 생각했지 점을 보는 행위에 합리적 원리가 내제되어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주역』과 융의 동시성 이론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름의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s)',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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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생은 현대만의 특징이 아니다. 고대 사람들 역시 점으로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연에 담긴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런 사유를 바탕으로 출발한 책이 『주역』이다.

 

과거 유학자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했던 ‘사서삼경’의 삼경 중 하나가 《역경》, 곧 『주역』인데 점을 치는 주역이 왜 필수 과목이었을까. 주역은 ‘주(周)나라의 역(易)’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은 끊임 없이 변한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변화무쌍한 세상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내포하고 있어 주역은 단순 점서가 아니라 옛 유학자들에게 수양을 돕는 경서였던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쓰여 위기에 대한 여러 지침을 제시하는 주역은 ‘위기의 책’이라고도 불린다. 위기와 관련하여 주역이 제시하는 메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는 신중함의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자기 자신을 안정시킨 다음에 움직이고, 자기 마음을 평안하게 한 다음에 말하고, 위태로운 상태로 움직이면 백성들이 함께 하지 않고, 두려운 마음으로 말하면 백성들이 호응하지 않고..."

 

『주역』, 「계사전」

 

 

주역이 강조하는 성찰, 절제, 신중함으로 자신의 내면을 다스려 중도를 유지하는 것은 ‘자기(The Self)를 강하게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재해석은 융의 동시성 이론과 관련이 있다.

 

 

 

동시성 이론(theory of Synchronicity)으로 보는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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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스위스 분석심리학자 카를 쿠스타프 융(1875~1961)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융은 비이성적인 학문이자 미신으로 여겨질 수 있는 주역을 ‘동시성 이론(theory of Synchronicity)’으로 재조명한 학자이다. 동시성 이론이란 물리적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현상과 사건 사이에 의미 있는 일치성을 나타내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꾼 뒤 비슷한 사건이 현실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과 같은 비인과적 일치는 우리 삶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동시성 이론의 핵심은 '무의식'이다. 융이 말하는 정신 현상이란 무의식적 이미지이며 이 무의식이 객관적 상황과 일치되는 현상이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 보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조상들 혹은 인간 이전의 동물 조상들의 삶의 체험까지도 무의식의 맨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다. 예지몽, 직감, 기시감 등은 이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에 가까워질 수록 동시성 현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주역점의 경우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이 미래를 알고자 하는 심리 상태와 괘를 뽑는 행위 사이에 동시성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의미있는 일치를 나타내는 사건들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의식을 최대한 의식화 시켜야 한다. 즉,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파악하려 노력해야 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주역에서 강조하는 ‘위기 상황 앞에서의 신중함’은 곧 자신을 바로 알고자 하는 수양과도 연결된다. 동시성 이론과 함께 주역을 바라본다면 주역점을 통해 얻은 괘는 단순 우연이 아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다. 주역점을 친 당사자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값이며 자신에 대해 깊이 수양한 사람일 수록 미래를 잘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철학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2000)의 저자인 루 매리노프(LOU MARINOFF)는 주역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주는 은유의 거울’이라 정의한다. 즉 주역은 주역 점을 치는 그 사람 자체가 지니고 있었던 원칙, 삶의 목적, 염원을 정확하게 드러내주는 거울이라 본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여러 방면으로 해석 가능한 주역의 괘를 보고서 자신의 상황에 알맞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괘의 해석에는 본인의 가치관과 무의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론이지만 동시성 이론과 주역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자기를 강하게 하라' 는 가르침만은 분명히 가져갈 수 있다.


 

 

내 안의 데미안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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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정신적 힘, 바로 내면의 힘이다. 즉 ‘자기’가 발달할 수록 분별력이 상승하며 예지가 강해진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악당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한 싱클레어는 같은 반 친구 데미안을 자신을 구원해줄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데미안의 행적을 쫒는다.

 

저자 헤르만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융의 제자이며 동료인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에게 정신 분석 상담을 받았다. 그 이후 <데미안>을 출간했던 흐름으로 보아 소설 속 데미안은 바로 주인공 싱클레어의 진정한 내면으로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진짜 나, 즉 ‘자기(The Self)’를 알아가는 것, 참 나를 찾아 그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은 이 소설의 모토이다.

 

무의식에는 부도덕한 생각과 감정, 원초적인 본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의식 수준에서 마주하기 힘든 기억일 수록 무의식에 깊이 억압되어 저장된다. 하지만 그 무의식 또한 내 자신이며 오히려 나를 더 잘 보여주는 공간임이 분명하다. 참 나를 만나기 위해선 내 무의식의 닫힌 문을 두드려야 한다. 어쩌면 진정한 나를 만나는 과제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다가갈 수록, 내 정신이 내면으로 집중될 수록 위기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흔들리지 않게 지키는 단서가 마련될 것이다.

 

 

[임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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