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 이유 [영화]

레인 판데레이켄과 프레데릭 드 와일드의 <기쁨의 궁전>
글 입력 2023.10.30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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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반어적인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인 비비안에게서 기쁨은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인형이 쓰레기처럼 쌓인 방에서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다.

 

밤이 되면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인형을 헤집고 일어나서 오락실로 간다. 담배를 피우며 시끄러운 기계에 동전을 넣는 그녀는 커다란 곰인형을 등에 업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비비안은 왜 인형을 모으는 것일까?

 

 

기쁨의궁전.jpg

 

 

그녀의 딸인 사스키아가 익사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일찍 보낸 부모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다.

 

배우는 부모가 느낄 수 있을 가장 참담한 감정을 탁월하게 전달해 낸다. 사스키아가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그녀는 '당신의 딸은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라는 대답을 듣자 굳게 입술을 다문다. 자신만의 기쁨의 궁전에 갇혀 있다가 적나라한 현실을 맞닥뜨린 것이다.

 

사스키아가 죽던 상황을 기억해 내고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던 비비안은 금세 일그러진 표정을 갈무리하고 오락실로 향한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회피해 버리는 것이 비비안이 삶을 연명하는 방법이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부르고,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일각에서는 아이를 앞세운 슬픔이 너무 커서 그것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견에 대한 사실 여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자식을 잃은 슬픔이 말도 못 하게 크다는 사실만큼은 차마 반박하기 어렵다.

 

이처럼 어떤 흉터는 가슴에 박혀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 「기쁨의 궁전」을 통해 그들의 심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세상의 많은 '비비안'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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