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마법 - 사울 레이터 100주년 기념 에디션

글 입력 2023.10.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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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는가.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 특별한 장소에 방문했을 때, 지나가는 찰나를 붙잡아두고 싶을 때 사진을 찍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흔한 사진은 여행 사진이다. 평소에 사진을 잘 찍지 않은 사람들도 여행지에서는 사진을 남긴다.

 

오래전 3개월 동안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찍은 사진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첫 마디가 "사진만 보면 인도인지 어딘지 전혀 모르겠는데?"였다. 내 사진첩에는 타지마할 같은 유명 관광지 사진이 아니라 기차에서 마신 짜이티, 평범한 가정집의 벽돌무늬, 동네를 떠도는 강아지, 요가 아쉬람 정원의 푸른 잔디와 같은 평범한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사진을 잘 찍지 않았던 그때도 굳이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서 남겨두고 싶었던 장면은 아주 사소한 여행의 일상이었다. 여행중에는 평범한 순간도 마법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 사진을 찍으려고 왜 여행을 떠나는지 모르겠다는 한 사진가가 있다.

 

사울 레이터 (Saul Leiter, 1923-2013)는 60년 동안 뉴욕 이스트 10번가에서 살면서 동네 거리의 사진을 찍어왔다. 그가 카메라의 담는 장면들은 일상의 장면들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눈 오는 거리, 동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길고양이, 카페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그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영감을 찾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아무리 아름다운 장면도 매일 보면 지겨워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평생 한 동네에 살면서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지 놀랍다. 사울의 사진에서 그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마법 같은 능력을 본다.

 


"나는 그제야 사울의 작품이 그토록 매혹적인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일상 한복판에서 우아함의 순간을 포착해 낼 줄 알았고, 길을 거닐고, 밥을 먹고, 침대에 눕는 평범한 순간들을 좀 더 반짝이게 만드는 법을 알았다. 그의 작품에서 카메라와 붓놀림은 하나로 합쳐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자예요. 가장 사소한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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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aulleiterfoundation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작년까지 서울에서 사울 레이터의 전시가 열렸었고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모두 전시에 다녀왔었다. 전시는 놓쳤지만 책을 통해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그의 사진들은 수많은 팬들의 찬사처럼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게 아름다웠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도 그의 뷰 파인더를 통해 특별하게 빛난다.

 

이번 100주년 에디션에서는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해 회상하는 사람들의 글이 담겨있다. 사울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사울이 예술로 떼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말년에 그의 작품이 점차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오히려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사울의 부모님 모두 유서 깊은 랍비 출신으로 사울 또한 위대한 탈무드 학자가 되기를 모두가 기대했다. 어린 시절에는 종교 공부에 매진했으나 곧 예술에 마음이 뺏겼고 후에 피츠버그를 떠나 평생을 뉴욕에서 보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가족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반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힘들어했다.

 

사울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본다. 종교인과 예술인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년. 가난하지만 돈에 굴복하고 싶지 않은 예술가. 매일 같은 골목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는 사진가. 말년에 세상의 주목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볼 수 없었겠지만 그는 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예술로 지은 집에서 혼자 앉아 조용하지만 황홀한 삶을 이미 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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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aulleiterfoundation

 

 

사울의 사진을 보며 잊고 있었던 필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장 찍고 그중에 잘 나온 한 장을 건지는 스마트폰 방식의 사진 말고, 고민하면서 셔터를 누르는 필름 카메라의 신중함이 그리워졌다. 오래 전 자주 고장나고 현상소를 들락거리는 일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팔아버린 첫 필름 카메라가 생각이 났다. 좋은 글을 읽는 사람을 쓰고 싶게 만들고, 좋은 사진은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든다.

 

어제와 같은 오늘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사울의 마법 같은 능력을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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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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