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던히, 무디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 [영화]

글 입력 2023.10.14 21: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왜? 난 행복해지면 안되니?" 영화 속 4남매의 엄마가 12살 첫째 아키라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과연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다고 무작정 떠나는 것을 홀연히 보내줄 수 있을까? 본인의 나이가 12살에 동생들이 3명이나 더 있다면 말이다. 이러한 전제조건 없이, 스스로 설 수 있는 나이라 하더라도 정확한 사유도 모른 채 매번 갑자기 사라지는 엄마를 이해하고 떠나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기도 전에 엄마는 떠났다. 그냥 무던히 늘 그래왔듯 살아가야 하는 하루일 뿐이다.


“엄마는 정말 우리를 버린 걸까?”

 

이 영화의 4남매에게 필요한 당연한 부모의 사랑이란 이상과도 같았다. 보살핌을 받고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도 전에 냉혹한 현실의 파란 앞에 매일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나시 스가모의 4남매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러한 사건을 소재로 사용하며, 일본 사회의 날카로움을 보여주되, 아이들의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온 날, 집 주인에게 엄마는 아키라와 본인 둘만 산다고 말하지만, 잔뜩 들고 온 캐리어 안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셋째 시게루와 막내 유키가 있다. 엄마는 아키라를 제외한 아이들에게 베란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주의 시키고 빨래를 하는 둘째 교코에게만 베란다를 허락한다.

 

감독은 이들에게 세상 밖을 보여주지 않는다. 맑은 공기와 따스한 볕을 직접 몸에 닿게 해주지 않는다. 촬영을 할 때 창문을 이용하여, 창문 밖에서 안을 찍는 구조를 많이 사용한다. 세상에 내닫지 못하는 투명한 벽을 통한 연출을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감독은 이 영화에 핸드헬드와 배경이 잘 보이는 풀샷을 이용하며, 기법이 보이는 영화적 표현을 줄이고 좀 더 다큐멘터리 같은 요소를 넣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선, 카메라. 즉 관객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한 발자국 떨어져 그들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볼 수 있도록, 3자의 시선으로 촬영과 편집을 한다. 이 영화는 대사도 많이 나오지 않는데, 그렇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준다. 100번 말로 듣는 것보다 1번의 행동이 더 기억의 잔상으로 남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치열한 행동들에 충격을 받는다.

 

 

KakaoTalk_Image_2023-10-22-21-43-06.jpeg

 

 

첫째 아키라는 또래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고, 야구를 하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다. 하지만 결국 아키라는 공부 대신 당장 먹고살아야 할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려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16살이 되지 않아할 수 없는 냉담한 현실에 수긍하고, 야구공이 아닌 플라스틱 공을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던지며, 대답 없이 무심하게 맑은 하늘에 공을 던진다. 한번은 아빠에게 받은 돈으로 또래 친구들과 놀며, 책임이 아닌 회피를 선택하는 때가 온다. 동생들을 위해 늘 책임지고 행동하는 아키라지만, 어른 아이도 그저 진짜 어른의 눈엔 사랑받아야 할 아이였다. 하지만 전기도 수도도 끊겨버린 집과 어린 동생들을 보며, 다시끔 마른 몸을 짓누를 삶의 무게를 짊어진다.

둘째 교코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한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작은 피아노를 치며, 언젠가 진짜 피아노를 살 날을 기다리며, 용돈을 모은다. 하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하며, 피아노 사려고 모은 돈을 생활비로 낸다. 하지만 둘째 교코는 옷을 팔아버리자는 첫째 아키라의 말에 끝까지 엄마 옷을 놓지 못하고, 옷에 남은 잔향에 안겨있는 어린아이다.

셋째 시게루와 막내 유키는 꿈이 생길 수도 없는 환경에 있다. 제대로 밖을 나가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이 나이 때 필요한 건 더더욱 부모님의 사랑일 뿐. 더욱 마음이 안 좋았던건 엄마가 떠남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했던 나가지 말라는 약속을 지킨 셋째 시게루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오히려 그 웃음이 씁쓸한 미소로 다가와 웃을 수 없었다. 아이의 웃음이 진짜 웃음 같아 보이지않았고, 집안의 우울을 웃음으로 승화 시키려는 노력 같았다. 그리고 막내 유키 또한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히 따르며, 이들은 또 하루를 버텨낸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 현실에서도 아이들은 웃는다. 끈끈한 유대감으로 서로에게 의지한다. 어느 날 연락이 끊긴 엄마에게 온 오천엔. 아이들은 세상을 넘어 자유로이 밖으로 향한다. 우리에겐 일상 같은 외출이 이들에겐 해방이다. 하늘에 핀 벚꽃을 바라보고, 놀이터에서 땅도 마음껏 밟아보고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것도 잔뜩 고르며, 감독은 아이들의 작은 일상의 행복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하수구에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꽃 안에 든 씨앗을 꺼내 척박하게 뭉친 흙을 봉투에 들고 집으로 온다. 그리곤 컵라면 컵에 씨앗을 심는다. 무심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작은 것들에도 따뜻한 시선을 내어준다. 수도가 끊겨 먹을 물도 없지만, 셋째 시게루는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나는 것에 물을 주며 생명을 불어 넣는다. 그렇게 자라지 않을 것 같던 잎은 어느새 꽃을 피우고, 침울하게 파란이 일어난 집 안엔 조용히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는 초록의 잎들만 무성해져있었다.

 

 

KakaoTalk_Image_2023-10-22-21-01-46.jpeg

 

 

영화 중 후반부에선 다른 현실이지만 슬픔이 공통된, 여학생 사키와 유대감을 쌓아간다. 그렇게 깊은 유대감을 쌓고 있던 어느 날, 집 주인이 열려있는 집 안을 방문한다. 하지만 집주인은 엉망인 집안을 둘러보기보단 월세가 밀려 내려왔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마주한 안도감보단, 쫓겨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겁을 먹는다.

 

어느 날, 첫째 아키라에겐 초등 야구부 시합 공석으로 인해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온다. 그렇게 아키라는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수평으로 오는 공을 주고받으며, 마음껏 땅을 밟으며 웃는다. 하지만 흐린 현실 앞에 작은 행복은 잠깐 마주하는 신기루일 뿐, 회색빛 현실 앞에 행복은 지속될 수 없었다. 감독은 행복해하며 야구를 하는 첫째 아키라와 어두운 집안에서 처음으로 의자에 올라가 밝은 세상 밖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막내 유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그러나 둘의 행복은 유키가 의자에 떨어져 제대로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일어난 죽음으로 지속되지 못한 채 흑백으로 변해간다. 보호소나 누군가에게 들키면 남매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렇게 유키의 죽음은 슬퍼할 새도 눈물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고, 첫째 아키라는 여학생 사키의 도움을 받아, 유키가 좋아하는 신발을 신기고 아끼는 곰인형과 아폴로 초코를 가득 캐리어에 싣고 유키와 보고싶었던 비행기를 보곤, 그 근처에 묻는다.

  

그리고 다음 날, 3남매와 여학생 사키는 그렇게 무던히, 무디게, 같이 또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역시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슬픔을 가졌는지 어른들은 여전히 모른다.

 

 

KakaoTalk_Image_2023-10-22-21-01-50.jpeg

 

 

일본에서는 이러한 아동 방치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렇게 일본이 드러내기 싫어하는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아이들의 성장에 키포인트를 잡아, 범죄 사건 영화보다 마음을 쓰리게 한다. 이런 비극에서도 아이들의 밝은 빛과 시선을 보여주기에 관객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자신보다 더 어린 씨앗을 위해 기꺼이 흙을 골라내고 집에 데려와 자신이 먹을 물을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런식으로 관객에게 사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 역시 조금만 더 사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은 미래고 희망이다. 아이들이 씨앗에게 준 조그만 관심으로 꿋꿋이 자란 것처럼 어른들도 지나가는 작은 것들에 조금 더 따뜻하게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작은 움직임과 행동들이 모여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회를 만들고 그것은 온기로 가득 차 선순환의 바람이 되어 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황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