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정하고 섬세한 그림책의 세계 -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이제야 알게된 즐거움
글 입력 2023.10.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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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졸업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그림책을 처음 읽은 건, 한 전시회를 가면서부터였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였다. 『돼지책』이나 가족 시리즈(『우리엄마』, 『우리 아빠가 최고야』 등)의 다양한 캐릭터성과 숨은 관계, 서사에 즐거웠다. 분명 어렸을 때 봤던 것이라 친숙하고 익숙한 마음이 들면서도 완성도 높은 삽화와 섬세하고 다정한 그림체를 알게 되었다.


전시 이후로 그림책이 궁금해졌다. 현재 살고 있는 할머니 댁에 자주 놀러오는 사촌 동생 덕분에 몇 권의 어린이용 책이 있길래 한 번씩 들춰봤다. 어느 날은 그림책 표지에 있는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진저와 아기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의 치즈색 빛깔와 어쩐지 복슬복슬하고 보드라워보이는 털, 생각보다 더 기다란 수염은 절로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들었다. 그림책은 굉장히 좋은 교보재였다. 에바 알머슨의 『나는 해녀입니다』라는 책을 추천받아 읽으며 우리나라의 해녀들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기도 하면서 점점 그림책 관심사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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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다정함을 낳는다



그러다 발견한 이 책. 제목마저 따뜻한 『나에게 친절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은 오랜만에 다정하게 살자는 말을 누구보다 다양하게 말한다. 곱씹을 기회를 주었다. 특히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은 친절을 나누어주었던 할아버지가 동물 친구들로부터 보살핌을 돌려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은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나만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닌지를 생각하곤 했다. 친구와 우정을 나눌 때도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지 가늠하고 싶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 그 아이가 나를 아끼는 만큼만 나도 상대에게 마음을 주고 싶었다. 기브하기도 전에 얼마만큼 테이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구두쇠 같은 마음이 부끄러우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마음의 온도가 다른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당연히 다른 거지. 온도 차가 있어서 내가 조금 앞서 나가더라도 다정한 사람들은 그 애정을 알아봐 주고 귀하게 받아준다. 나도 마찬가지일 테다. '호의가 호의로 돌아왔듯이 친절만이 친절을 낳는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이왕이면 친절하고 따뜻하게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글과 그림이 서로의 자리를 채운다



그림책은 압축된 글로 이야기를 표현하기 때문에 충분히 말하지 않은 활자의 빈자리를 그림이 채운다. 『물냉이』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물가에 나 있는 물냉이 하나로 가난했던 시절과 고향의 모습을 떠올린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왼쪽 페이지에 옥수수 옆에 차를 세운 현재의 가족 모습을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 과거의 엄마와 남동생이 대나무 숲에 서 있는 모습을 나란히 배치한다. 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이동함에 따라 '미국을 상징하는 옥수수와 중국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제본 선에서 맞물려 연결되며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게 회상이 이뤄지게' 한다. '글과 그림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빈자리를 채워가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 우리에게는 글자뿐 아니라 그림이라는 언어도 있었더랬지. 더 직관적이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시각적인 방법으로 듣는 것이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움직이는 그림과 어디선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생생함까지 담아낸다.


*

 

책을 읽다 보니 자꾸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도 이 친구가 언젠가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며 호기롭게 말하던 모습이 생각나 다녀온 것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최근에 좋아하는 것들은 이 친구가 벌써 몇 년 전에 좋아했던 것인 경우가 많았다. 그림책, 여행 에세이, 인디 밴드, 래퍼까지. 이 친구는 어떻게 벌써 알아보고 좋아했던 건지. 멋진 것을 알아보는 눈이 뜨여 있어서 이를 낚아채고 누구보다 빨리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


그림책의 매력을 먼저 알았던 사람들에게 왜 이걸 이제 알려줬냐며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정갈하고 틀에 짜인 활자 밖으로 펼쳐진 섬세한 그림의 세계, 그리고 글과 그림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

 

줄이고 줄여서 의미만 남기고 최대한 함축한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은 글 사이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주는 듯하다. 쉬운 말로, 게다가 몇 개 안 되는 단어로 이만큼 완결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림책 작가들은 전부 시인인 것 같다.

 

글쓴이와 그린이가 동일한 것도 독특한 부분이다. 글도 쓰고 그림까지 그린다니.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재주, 그 두 개를 갖춘 상태에서 온 세상의 아이들과 어른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다정한 메시지까지 가진 사람들. 부러울 따름이다.


시작하는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도 배워야 더 잘할 수 있듯 다정함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 같다. 다정하게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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