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홍신자가 전하는 인생 수업 - 생의 마지막 날까지 [도서]

글 입력 2023.10.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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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날까지, ‘오늘을 처음 사는 것처럼 춤추고 사랑하라!’ 


한 해의 속도가 빠르다. 한 달치 삶을 열 두 번만 넘기면 이윽고 일 년이라는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진정 빠르지 않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가끔은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경험하는 속도보다 앞서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인생도 참 금방이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필자는 종종 시작과 끝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골랐고, 생각보다 더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틈날 때마다 이 책을 잊지 않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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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제목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이다. 또한, 국내 최초 아방가르드 무용가이자 인도에서 구도의 길을 걸은 명상가 홍신자의 데뷔 50주년 기념의 에세이이다. 책에 나온 소개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의 행복을 누리며 우리를 속박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는 책‘이다. 노년이 된 홍신자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자신과 세월을 돌아보며 자유를 찾고자 갈망하고 분투했던 지난 그의 삶을 한 권의 에세이로 담아냈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홍신자가 ’무용‘을 접하게 된 계기와 시작 과정과 그가 바라본 죽음을 중점으로 개인적인 필자의 이야기와 엮어 써내려 가보려고 한다. 그 이유 즉슨, 작가의 삶에서 필자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춤‘, 우연을 가장한 숙명이 되다.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에 오른 1년 후, 홍신자는 뜻하지 않게 ‘무용’을 접하게 된다. 바로, 현대 무용의 대가였던 알윈 니콜라이 공연을 우연히 본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전위 무용을 하는 무용가, 무대와 조명, 리듬과 음향 그리고 동작 등이 어우러진 무대에서 홍신자는 어떤 전율을 느낀다. 머릿속에서 ‘저것이다!’라는 울림과 함께 지금껏 자신의 큰 고통은 가슴속 응어리를 분출해내지 못한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대로, 무용 학원에 찾아갔고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다음날, 나는 유명하다는 무용 카운슬러를 찾아가 내가 무용을 할 수 있겠는지 물었다. 카운슬러는 내 나이를 듣더니 뜻 밖이라는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들은 열살도 안 되어 시작하는데, 스물일곱에 시작하기엔 좀 어렵지않겠냐면서 고개를 저었다. 육체적으로 적응하기 힘들테니 무용가로 성공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중략)… ‘내가 또 잘못 짚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가장하고 싶은 것이 무용이다. 이것 뿐이다.”]

 

지금도, 27살의 나이라 한다면 무언가 직업적으로 시작하려고 할 때 본의 아니게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는데 홍신자가 살았던 시대는 오죽했을까 싶다. 무용 학원 등록을 할 때도 인포메이션에서 무용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말을 듣고 나이라는 장벽을 다시 느낀다. 그럼에도, 홍신자는 무용을 통해 성공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만 가득했다. (참, 나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매번 큰 영향을 주는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만 매번 아쉽다.)

 

필자의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 또한 작가처럼 20대 후반이 된 나이에 다시 고등학교 시절 접어왔던 음악의 꿈을 시작하고 준비하고 있다. 준비한 지도 9개월 이상이 넘어가는데 꼭 수험 생활을 하는 수험생 마냥(사실 그렇다.)미래를 위해 현재의 일상을 촘촘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더욱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0대 후반인 나이에 다시 시작한다. 필자 또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굳게 먹고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원하는 삶으로 향해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지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게 참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는 잘나고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그 사람들도 각자의 노력 끝에 얻어졌겠지만 말이다.(참으로 간사한 생각이다.) 하루는 기쁘고, 하루는 슬픈 그런 날로 보낼 때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한편,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로 홍신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용 인생을 시작했다. 자그마치 8년 이라는 시간 동안이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용가’라기 보다 ‘운동선수’에 가까울 정도로 춤을 위해 매일같이 근육을 펴고 다스렸다 한다. 춤을 위한 고통은 계속 되었지만 놓치지 않았고 지속했다. 게다가, 밤이고 낮이고 지친 몸을 이끌며 푼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온 유학이라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은 오로지 자신의 몫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시간을 “고통은 엄청 났지만 ‘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절실히 느끼고 발견할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자아실현 사이, 결국 그녀는 8년 동안의 학업적 목표를 이뤄내고 힘겨운 나날 끝에 자신의 목표치를 이뤘다. 위 부분을 읽으며 ‘나는 그러한 사람인가’ 생각했다. 최근 들어, 나의 하루는 늦은 밤을 넘어 새벽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그 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 고통이라는 시간을 견뎌내는 힘이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1년 채 되지 않은 시간에도 확실한 결과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 동안 좀 더 고통을 인내하고 버티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래야겠다. 

 

[“한눈팔지 않았고 눈코 뜰 새도 없었다. 문자 그대로 온몸을 바친 8년의 세월이었다. …(중략)…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나니, 뉴욕 예술학교를 마칠 무렵 학교 무대에 올린 나의 실험적인 작품을 보고 학장이 “이제 네게는 더 가르칠 것이 없다.”라고 했을 땐, 마치 스승으로부터 하산을 허락받은 검객처럼 비장해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죽음을 ‘춤’으로 표현하다.


 

이번에는 죽음에 관해서다. 개인적으로 필자에게는 ‘죽음’은 때론 회피와 이해 사이의 단어 같다. 피하고 싶지만 어찌됐든 경험할 것이라 이해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다소 죽음을 다루는 일이 여전히 어렵고 복잡한 마음이 들지만 이 책에서는 자주 나오는 단어가 ‘죽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홍신자는 어릴 적부터 겪은 전쟁으로, 언니의 죽음을 경험하며 즉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춤으로 표현했다. 특히, <제례>라는 춤으로 표현했다. <제례>는 우리의 전통적인 곡소리를 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장사 지낼 때 하는 일련의 의식을 변형해 구성한 정적인 무용이다. 그녀는 <제례>를 무용으로서 언니의 못다 핀 생의 한을 풀고자 했는데 뜻밖에도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 올린 이것은 <뉴욕타임스>가 신인 무용가의 첫 작품으로서 이례적인 호평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미적인 요소를 표현한 무용과는 다르게 <제례>는 한국 관객들에게 충격을, 평단에게는 호불호가 갈린 반응을 주었다. 그럼에도,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인기는 2년 여간 계속 되었다. 하지만, 홍신자는 어느순간 <제례> 공연에서 감동의 실체가 잡지 않아 번아웃이 온다. 많은 관객들에게 실제로 감동을 주었음에도 영원한 감동을 주기 위한 표현의 방법을 고민했지만 실체가 보이지 않아 그로 인한 한계와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큰 회의감을 마주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인도로 떠나게 되었고 그 곳에서 고행이란 고행을 경험한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삶과 죽음의 현장을 목도하고 명상과 수련을 통해  다시 마음 깊은 곳에서 춤에 대한 욕구와 본능을 깨닫게 된다.

 

‘나는 결코 춤을 저버릴 수 없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하리라는 것을 천천히 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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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3세 나이로 노년기에 있는 홍신자는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욱 적기 때문이고, 이제 죽음을 받아드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오히려 평온하게 기다린다는 그녀는 지난 2020년에는 자신의 장례를 이미 치르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다 예전에 필자가 문뜩 한 방송에서 외국인 여자가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살아있을 때 가족들과 친구 등과 함께 자신의 유언이나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장례허식을 뺀 진정한 장례이자 온전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장례라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유로운 삶에 대하여.


 

얽매이지 않고 솔직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홍신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한 늦은 나이에 남들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따라 춤을 선택했고, 이를 지속시켜 무용가로서 삶을 걸은 사람이다. 그녀의 삶의 과정을 보며, 필자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목표한 음악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음악인으로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발씩 나아가보려고 한다. 그토록 원했던 원하는 삶이 코앞에 있으니까. 

 

“솔직해지면 됩니다.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녀는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솔직해지면 됩니다. 용기가 필요하지요.”라고 말한다. 맞다. 그녀의 말처럼 솔직하지 못한 삶은 뿌리와 같아서 순간을 모면할 수는 있지만 그 뿌리는 단단하지 못해 바람에도 날리는 빈약하게 키만 큰 나무의 꼴이 되어버린다. 그에 비해, 솔직한 삶은 뿌리가 깊게 내린 나무다. 자유라는 삶의 솔직함은 자신의 뿌리를 강하게 만들어 강한 바람도 단지 춤추듯 흔들릴 뿐이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빈약하게 키만 큰 나무에서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자신에게 솔직해진 삶을 살고 있는 요즘은 예전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순간조차도 즐겨보려 하고 있다.


늦은 나이 시작한 무용의 길, 경제적 어려움으로 파란 만장했던 그녀의 삶,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만나고 죽음을 춤으로 표현했던 무용가, 홍신자.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얘기한 에세이 ‘생의 마지막 날까지’를 읽었다. 개인적으로 무용가로서 시작했던 그녀의 삶을 보며 위로와 희망을, 죽음에 대한 차분한 생각을,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

 

홍신자 - 세계적인 아방가르드 무용가이자 대한민국 최초 전위예술가, 명상가이자 작가.


1940년 충남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만 2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데뷔해 [뉴욕타임스]의 이례적 호평을 받으며 성공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 인도로 떠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서 수행의 길을 걸었다. 3년 만에 다시 무용계로 복귀한 뒤에는 래핑스톤(웃는 돌) 무용단을 설립해 존 케이지, 마가렛 렝 탄, 백남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71세에 독일인 베르너 사세 한국학 교수와 결혼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히는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을 춤으로 형상화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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