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eçon 5 : 어설픈 문장에 완벽한 사랑을 담아 [사람]

J의 첫 부모님댁 방문기
글 입력 2023.10.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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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임시공휴일. 나는 오전 프랑스어 수업을 마치고 본가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단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임시공휴일에도 열정적인 학생들의 요청으로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었고 이날은 대명동사라는 영어에도 없는 새로운 문법을 배웠다.

 

프랑스어로 "나는 쉬고 있다 (Je me repose)"라고 말할 때 "쉬다" 동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을 쉬게 하다" 동사를 쓴다.  Je me repose를 직역하면 "나는 나를 쉬게 한다"가 된다. 마찬가지로 "화장을 하다", "옷을 입다"와 같은 표현도 "화장을 시키다", "옷을 입히다"라는 대명 동사와 "나 자신"이라는 단어를 함께 쓴다.

 

reposer : 쉬게 하다 / me : 나 자신

Je me repose : 나는 나를 쉬게 한다.

 

maquiller : 화장을 시키다 / me : 나 자신

Je me maquille : 나는 나를 화장시킨다.

 

habiller : 옷을 입히다 / me : 나 자신

Je m'habille : 나는 내게 옷을 입힌다.

 

KTX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무음 모드로 조용히 단어를 웅얼거렸고 J는 옆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J를 쳐다보면 J가 단어를 읽어준다.

 

이번 추석은 J와 처음으로 함께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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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을 부모님에게 시시콜콜 늘어놓는 편이 아니다. 부모님이 내 연애에 대해서 아는 바도 거의 없을뿐더러 한 번도 연애 상대를 가족들에게 소개한 적도 없다. 그런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부모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백 개쯤 떴다. 어떤 사람이니. 몇 살이니. 직업은 뭐니. 어디 사니. 부모님은 뭐 하신다니. 질문 폭격을 받아낸 후 눈치를 보며 내가 슬그머니 덧붙였다.

 

"근데... 프랑스 사람이야..."

"응?????"

 

엄마는 충격을 받아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을 지방 도시에서 국어선생님으로 살아오셨고 비행기를 오래 타는 해외여행도 좋아하지 않은 엄마에게 외국인은 정말 티비에나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가족들은 아직 J의 존재를 몰랐던 지난 설날. 사촌동생이 흑인 남자친구를 데려왔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아이고 외국인이라니 무슨 일이니. 말도 안 통하고 생긴 것도 다르고. 엄마는 진짜 외국인 사위는 싫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밥알이 목에 걸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속으로만 조용히 "엄마... 내 남자친구는 프랑스인이야..."라는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혹시 마약같은거 하면 어쩌냐는 엄마의 말에 나는 박장대소하며 엄마에게 외국인은 외계인 같은 존재였구나 싶었다. 은퇴 전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던 아빠는 외국인이든 외계인이든 누군가 만나고 있다니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J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엄마도 만나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안심시켰다. J의 한국어 실력도 나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은 내가 통역해 주면 되니까. 나도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J와 대화하고 있고, 완벽하지 않은 J의 한국어로도 충분히 가족들과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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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낯선 손님맞이 준비에 신나 보였고 남동생 부부는 먼저 도착해 집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는 고등학교 때 배운 제 2외국어가 불어였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시전했고 동생 부부도 프랑스어 몇 마디를 배워왔다고 했으나 J의 자연스러운 한국어 인사에 정작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저녁을 먹기 전 J가 부모님과 동생부부 선물을 내놓으니 동생 부부도 웰컴 기프트 느낌으로 준비했다며 J에게 옷을 선물했다. 저녁을 먹고 과일을 깎고 있는데 엄마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얼마 전 J의 생일이었다는 내 말을 기억하고 사두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은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었고 J는 쑥쓰러워하며 초를 불었다.

 

저녁을 먹고 아빠는 한국 전통 놀이라며 윷놀이를 꺼내왔다. 윷놀이를 처음 보는 J에게 게임은 일단 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윷을 던지게 했다. 각자 팀이 윷을 던질 차례가 될 때마다 응원이 이어졌고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도 다른 팀에게 잡혀 다시 출발점에 서는 스릴 넘치는 전개가 이어졌다. 잡고 잡히는 말들의 싸움. 윷놏이가 이렇게 스릴 넘치는 게임이었나. 진 팀의 한판 더! 진짜 마지막! 요구가 이어졌고 그렇게 계속 윷을 던지다보니 분명 5시쯤 이른 저녁을 먹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다하고 자려고 누우니 자정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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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던 본가에서의 이틀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 엄마는 자꾸 얼굴을 봐야 친해진다며 J에게 자주 놀러 오라고 했다. 겨우 이틀 만에 J의 이름을 익숙하게 부르는 엄마를 보고 나는 마음의 경계가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벌써 J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 선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J가 감사 메시지를 적었다면서 단톡방에 공유해달라고 했다.

 

"어머님, 준비하고 요리하고 운전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음식이 맛있게먹었어요, 아버님랑 이야기 너무 잼있었어요. 윶놀이 가르져서 고맙습니다. 동생님, 선물을 너무 좋아해요, 썅큐! 다음에 또 내려올것입니다. 건강하세요~ "

 

내가 자는 동안 한참을 고민하며 적은 문장 같은데 문법도 띄어쓰기도 전혀 맞지 않은 엉성한 문장들에 웃음이 나왔다. 고쳐줄까 하다가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복사해서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가족들도 J의 메시지를 보고 나처럼 슬그머니 웃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이니까.

 

어설픈 언어지만, 우리가 함께 나누는 사랑은 완벽하다.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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