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은 놀이에 불과하며 허무하다, 그래서 자유롭다 - 도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내가 나를 믿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글 입력 2023.10.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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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고민이 있다. 물론 막학기를 마치고 수료생이 된 지금, 망망대해에 방향성도, 좌표도 잃고 해매는 돛단배 마냥 매순간 마음이 잔잔하지 못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번잡하기 만드는 고민은 워킹홀리데이에 관한 것이다. 죽기전에 한번쯤은 여지껏 살아온 나의 세월을 몸 담은 이 나라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발을 들이고 싶은 로망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교환학생은 코로나로 인해 실패했고, 나는 어느새 25살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이전처럼 무모한 선택을 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옥죄고, 그렇게 내 앞에 있는 두번째 기회인 워킹홀리데이를 두고 그것이 신기루가 아닐지 하는 의심 때문에 선뜻 그것만을 바라보며 열정을 쏟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작가이자 명사가라는 홍신자 선생님이 여든이 넘은 세월동안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경험하고 깨달은 바가 고스란히 책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며 어떤 큰 결정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어려움을 느끼는 나에게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굴레도 벗어던진채 과감한 선택을 하는 그의 행보는 때로 동경이 되고, 때로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이르러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었고, 마침 춤이 그 해답이 되어준 것 뿐이었다. 이제 춤 이상으로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자, 자유롭게 그것을 시작했듯이 자유롭게 그것을 버릴 수 있었다 (47p)
 

 

홍신자 선생님의 삶의 태도는 이토록 참 명확하다. '하고 싶으니까'라는 간단한 명제만 보고 어떻게 그토록 열정을 쏟아낼 수 있으며, 또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을까? 잡념과 걱정, 고민으로 똘똘 뭉친 인간인 나는 그녀를 보며 조금쯤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당한 고민은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 안에 잠식된 나머지 겁부터 내 시작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뼈와 살을 찢는 고통을 감내하며 늦은 나이에 무용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정점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뒤도 안 돌아 보고 그 커리어를 버려둔 채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로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녀 안에는 자기 자신을 잡아주는 단단한 구심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나에게는 잃을 것도, 부서질 것도 하나 없음을 알게된다 (67p)

 

어차피 인생은 환영이니 무엇을 해도 좋고 어떻게 살아도 괜찮지 않겠는가 (102p)

 

 

나에게도 그런 구심점을 찾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스스로가 내린 결정을 온전히 믿고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결단력을 기르는 일, 그것은 스스로와 친해지는 일로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홍신자 선생을 보며 비로서 그 방법을 깨닫는다. 바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소유한것, 나와 연결된 사람 그 모든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이 세상에는 나와 나 자신만이 남는다. 


사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나를 조금씩 갉아 먹고 있는 우울감도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 것은 하나의 작은 불씨였을 뿐이고 나 스스로 매말라가는 장작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원인이 크다. 어느 날, 친구와의 약속이 취소 되었고 나는 끝도 없이 우울감에 빠지는 스스로를 보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도 했고 지극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에 무너지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친구가 바쁘구나, 그러고보니 요즘 친구 한번 만나기 쉽지가 않구나, 다들 제 갈길을 찾아 바쁘게 살아가고 있구나, 고여 있는 채로 갈피를 잃은 건 나 뿐이구나, 그렇게 생각의 물꼬를 트자 걷잡을 수 없어졌고, 나는 진창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졌고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절의 가장 높은 공간, 그곳을 향하며 새벽에 올려다본 별이 가득한 하늘과 일출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은 나의 몸을 감싸는 향과 공기의 흐름, 마침내 마주한 해의 민낯까지, 홍신자 선생이 인도로 떠나 깨달음을 얻었듯, 나 또한 절이 제공해주는 자연 속에 조금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두고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일출을 보며 나는 인생의 허무를 느꼈고, 그것은 오히려 자유로움을 주었다. 그렇다, 결국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저 아름다운 해는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를 것이고, 어쩌면 영원할 그와 달리 나는 내일도 어찌되었건 살아갈 것이지만 육신이 명을 다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만 했지 제대로 직면해 본적 없는 나는 의외로 그와 마주하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끝이 날 인생, 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 그러니까 무엇이든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보이더라도 좀 어떤가, 언젠가는 모두의 인생은 끝이 날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 현재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청첩장 타이틀은 '러브 이스 플레이'였다. 인생의 모든 것은 다 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23p)
 

 

홍신자 선생은 인생의 마지막을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기로 결단을 내렸고, 그것은 그녀와 남편 서로가 인생이 놀이에 불과하다는 강렬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로가 서로의 굴레가 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인생이 놀이라, 참 즐거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 몸을 무겁게 만드는 상념이 많다. 원체 걱정형 인간으로 태어난지라 한 순간에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기란 내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홍신자 선생의 인생 교리를 접한 후 나도 조금쯤 스스로를 알아가고, 그로 인해 나를 믿어줌으로써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인생이 허무해도 괜찮을 만큼 외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부의 나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멀지 않은 미래, 어쩌면 새로운 나를 찾을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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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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