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꾼이 그리는 일러스트,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글 입력 2023.10.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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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밀스타인_포스터수정_0802-(1).jpg

 

 

오랜만의 전시회 나들이.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전시회인데, 최근들에 마이아트뮤지엄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 및 작품 선정에 있어 예술의전당 다음으로 잘 맞는 공간이다.


이번에 마이아트뮤지엄에서 본 전시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의 전시회였다.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성장한 곳은 호주, 활동하는 곳은 미국.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성장한 일리야 밀스타인은 현재 개인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자신만의 스타일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켜나가고 있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우리나라 LG와도 협업하였다.

 

 

Relax, Drink, and Love.jpg

Relax, Drink, and Love(2022) ⓒ Ilya Milstein

 

 

일리야 밀스타인의 일러스트는 디테일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그가 그리는 공간은 항상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위의 Relax, Drink, and Love처럼, 장면 하나를 상정하고 다양한 오브제를 집어넣어 심심하게 흘러갈 수 있는 순간을 풍성하게 표현해낸다. 따라서 작품 하나하나를 흥미롭게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림을 구성하는 수많은 선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한참을 그 앞에 서성이게 된다.


전시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은 총 4개의 캐비닛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의 일대기를 횡렬로 나열하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각 캐비닛마다의 카테고리를 정의하여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하였다.

 

더불어 전시 중간에 실제 작가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기획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를 재현해 두었는데, 관람객은 중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작품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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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2018) ⓒ Ilya Milstein

 

 

 

 

작품을 보자마자 너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작품 속 주인공, 화가는 그림에 있어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생활 습관은 미니멀리즘과 상당히 거리가 먼 것 같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다 있나!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브제는 파란 점이 하나 찍혀 있는 캔버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뒷배경에 더 눈길이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화가가 보인다. 순환하듯 흘러가는 시선을 따라 느껴지는 묘한 조화가 주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나아가 작품 속 화가가 어떤 인물일지 상상해 보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이 대단하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끝없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일리야 밀스타인은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전에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The Muse’s Revenge.jpg

The Muse’s Revenge(2019)ⓒ Ilya Milstein

 

 

두 번째 작품은 The Muse’s Revenge, 한국어로 <뮤즈의 복수>라는 작품이다.

 

총을 겨누고 있는 여성은 작품 속 그림 안에 그려진 모델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자신을 그린 화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총까지 겨누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설명에 따르면 일리야 밀스타인은 작품 초기에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도 그렸다고 한다.


<뮤즈의 복수>에는 과거 마치 도구처럼 여겨졌던 여성 모델들을 향한 불합리한 사회적 대우에 대한 일침을 담았다.

 

굉장히 직관적이고 잔인한 그림인데도, 슬픔이 느껴진다. 모델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복수에 성공했다는 기쁨에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진 않다. 오히려 펑펑 울고 있을 것만 같다.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야 했느냐며 비통한 현실에 울부짖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도 일리야 밀스타인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빛을 발한다. 혹 사전 지식을 모르고 작품을 보았다 할지라도, 작품 속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해보게 될 것이다. 주인공에서부터 각 오브제, 배경까지 펜 선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일리야 밀스타인은 그저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니다. 머릿속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야기꾼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작품들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자연히 이야기가 떠오르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작가의 정성에 감탄하게 된다.

 

전시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에 방문하면, 색색깔로 칠해진 그의 작품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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